『네. 남조선 정부가 나중에는 어칼지 모르갔디만 현재로선 죽이디 않구 보호해 주고 있는 것 같습네다.』

 곽만수씨는 불행 중 다행이라는 듯 놀란 가슴을 다스리며 조카를 바라보았다.

 『길타면 됐다. 인구 그 아이는 통일 될 때까지 잊어버리고 여기 남은 식구들과 네 살길부터 찾아라. 며칠 전에 국가검열위원장 하던 양형섭 동무를 만나 북남간의 적십자회담 이야기를 하다가 들었는데 이쪽에서 넘어간 우리 쪽 군인아이들이나 사민들까지도 남조선에서 뿌리 내려 살도록 남조선 정부가 직장도 알선해주고 결혼도 시켜주며 뒤를 봐 주고 있다 하더라….』

 곽병룡 상좌는 말없이 백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저러나 여기 남은 가족들이 걱정이다. 조국을 버리고 남조선으로 넘어간 배신자 아비라고 네 자리를 넘보는 사람들이 입질을 해대서 당장 조카가 직장에서 쫓겨날 터인데 늘그막에 어데 가서 고초를 겪어야 하나?』

 곽만수씨는 시름에 찬 얼굴로 조카를 바라보다 나이를 물었다. 곽병룡 상좌는 올해 쉰 세 살이라고 자기 나이를 가르쳐 주었다.

 『이제 조카도 옛날 같지 않아 심한 고생을 하게 되면 큰 병마를 얻게 되는데 어데 가서 부탁할 데도 없고 이 일을 어카나? 그런 부탁은 자기 몸 사리느라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 외에는 해결해 줄 사람이 없는데….』

 곽만수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민하다 영웅거리에 살고 있는 막내 동생을 전화로 불렀다. 곽병룡 상좌에게는 막내 작은아버지가 되는 곽민수씨는 올해 예순 여덟 살이었다. 큰아버지 곽만수씨보다 아홉 살이나 아래인 셈이었다. 곽만수씨 밑에 곽영수씨가 있고, 곽영수씨 밑에 곽진수씨가 있었는데 그 두 형제 중 곽진수씨는 항일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일찍 죽어서 시신이 우수리 강가에 매장되어 있었다. 곽병룡 상좌의 아버지인 곽영수씨는 일경에 쫓기다 총을 맞긴 했으나 다행히 조국 광복 후에 죽어서 시신이 대성산 혁명열사릉에 묻혀 있었다.

 막내인 곽민수씨는 두 형들이 항일투쟁을 하다가 목숨을 바쳐 유공자가 된 덕분에 요직을 두루 거치며 한때는 권세를 누리기도 했으나 그도 이제 70고개를 바라보는 나이라 힘이 없었다. 그래도 수령의 총애를 받으며 살던 항일투사의 피붙이들이라 국가에서 준 자가용을 타고 달려왔다.

 곽병룡 상좌는 큰아버지를 찾아본 뒤 영웅거리에 살고 있는 막내 작은 아버지한테도 찾아가 인사를 드릴 계획이었는데 마침 큰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작은아버지가 큰집까지 달려오니 잘 되었다 싶어 거실로 나가 큰절을 올리며 인사를 했다. 그때 밖으로 나갔던 큰어머니가 집으로 들어오며 눈이 똥그래졌다. 곽병룡 상좌는 큰어머니한테도 큰절을 올렸다. 큰어머니는 조카의 인사를 받고는 곽민수씨와 함께 방으로 들어와 남편으로부터 곽병룡 상좌가 찾아온 사연과 인구 소식을 듣고는 안색이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