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체외수정 없이 참여자 8.4% 성공'여성 체질·몸상태'임신여부 좌우약재·침·뜸 활용 자궁환경 변화 치료

전국 최초로 인천에서 이뤄진 '한방 난임치료 지원사업'이 성공적으로 일단락됐다.

지난 3개월 간의 치료로 평균 5년 동안 아기를 갖지 못해온 난임여성 8명이 임신에 성공했다. 사업에 참여한 난임여성은 총 96명이었다.

인공·체외수정 없이 참여자의 8.4%가 자연임신된 것이다.

치료는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석 달 간 진행됐다. 사업주체인 인천한의사회는 모든 참여여성을 대상으로 최소 넉 달 간의 추적관리에 들어갔다.

보통 한방치료의 효과가 양방보다 늦다는 점을 감안하면 8명의 임신성공은 고무적인 결과라는 게 전반적인 평이다. 남은 추적관리 기간에도 적잖은 여성이 임신에 성공할 수 있다. 인천시 한의사회는 최종적으로 15% 안팎의 성공률을 예상하고 있다.

지금까지 임신에 성공한 8명을 중심으로 이번 사업을 중간결산해봤다.



- 짧은 기간·많은 나이 악조건 속 결과 좋아

한방치료로 자연임신된 8명은 모두 30대로 평균연령 36.4세다. 이번 사업에 참여한 난임여성 96명의 평균나이 35.4세보다 한 살 가량 더 많았다.

한방에서 임신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기점으로 보는 나이가 35세다. 8명 중 5명이 35세 이상 여성이었다. 3명은 40을 넘긴 나이였다. 보통 35세를 넘긴 난임여성들은 양방에서 인공·체외수정 시술을 받더라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고 실제 임신을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8명이 수술 없이 3개월 만의 치료로 자연임신에 성공한 게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인천한의사회 황병천 부회장은 "아직 치료의 효과가 뚜렷하다고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사업참여 여성 대부분이 과거 여러 차례 인공·체외수정으로도 임신하지 못했던 점을 감안하면 성과가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8명의 결혼기간은 평균 6.45년, 난임기간은 5.1년이었다. 이 기간 동안 이들은 계속해서 임신을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1~3번씩 인공·체외수정 시술을 받았고 최대 10번의 체외수정을 경험한 여성도 있었다.

8명의 난임원인은 몸의 체질과 건강상태에 있었다.

대체로 아랫배를 비롯해 몸 전체가 찬 냉증이나 몸 안에 불필요한 체액이 많은 습담, 기혈부족 등의 증세를 안고 있었다. '노산'으로 분류되는 많은 나이에 이런 요인들이 더해지면서 오랜 기간 임신을 못한 것이다.

8명 중 2명은 자궁내막증이란 병을 안고 있었다. 자궁내막증은 자궁 안을 감싸고 있는 막에 이상이 생겨 크고 작은 혹을 만들거나 자궁막을 두텁게 해 수정란 착상이나 배란을 어렵게 하는 대표적인 난임질환이다.

올해 30세인 백신영씨(가명)의 경우엔 특히 상황이 좋지 않았다. 사업참여 여성 중 나이가 젊은 편이었지만 자궁내막증이 심해 자궁 안에 지름 8㎝짜리 혹이 있었고 난관 두 개 중 하나가 막혀있기까지 했다.

지난해 6월 혹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고 회복 후 인공수정 시술까지 받았지만 바라던 임신을 할 수 없었다.

42세 이선희씨(가명)의 상황은 더 나빴다. 자궁과 관련된 특별한 질병은 없었지만 4번의 자연유산 경험이 있었다. 10년 넘게 아기를 못 가지면서 체외수정을 10번이나 받기도 했다.

잦은 유산과 수술로 자궁건강이 극히 안 좋은 상태로 이번 한방 난임치료에 참여했다.



- 난임여성, 어떻게 임신했나

한의학에선 여성의 체질·몸 상태가 임신여부를 결정적으로 좌우한다고 본다. 여성의 자궁을 '밭'에 비유하기도 한다. 물리적으로 정자와 난자를 결합시키는 양방의 난임치료와는 초점이 다르다. 그래서 치료도 여성의 몸 상태를 좋게 해 자궁환경을 임신하기 좋은 쪽으로 변화시키는 방식을 쓴다.

사업에 참여한 난임여성들에겐 약재와 침, 뜸 등을 이용한 치료가 이뤄졌다.

자궁내막증을 앓고 있던 백씨는 자궁건강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신장을 대상으로 한 치료를 받았다. 4월 13일부터 5월 4일까지 다섯 번에 걸쳐 막혔던 기혈을 뚫고 기운을 키우는 치료가 진행됐다. 신장은 여성의 임신과 관련된 호르몬 분비 등에 깊게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한의학에서 임신의 기운이 흐른다는 임맥(妊脈)을 따라 약침이 쓰였다.

치료 1주일 만에 백씨는 원활하지 못했던 배란이 다시 시작됐다는 병원의 진단을 받았다. 이후 5월 중순 초음파 검사를 통해 임신진단이 내려졌다.

임신 직후 만난 백씨는 "사실 수술도 받고 자궁건강이 안 좋아 처음엔 반신반의하면서 치료를 시작했다. 결과가 좋아 너무 기쁘다. 첫 아이다보니 설레고 한편 두렵기도 하다. 건강하게 잘 키우겠다"고 말했다.

올해 40세인 김희정씨(가명)는 몸의 기운을 북돋는 치료를 받았다. 아기를 못갖는 원인이 허약한 체질이었기 때문이다.

한방에선 이를 '기혈(氣血)' 부족이라 부른다. 몸에 특별한 병이 없을 경우 가장 흔한 난임원인으로 꼽힌다. 여성이 임신을 하려면 태아에게 나눠줄 만큼 기운(氣)과 혈액(血)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당연히 아기가 생기기 어렵다.

김씨에게는 기혈부족과 함께 많은 나이라는 걸림돌이 하나 더 있었다. 한의학에선 7의 배수 단위로 여성의 임신능력을 가늠한다. 한의학의 교과서 격인 황제내경(黃帝內徑)에 따르면 보통 여성은 14세에 처음 월경을 하고 21세부터 28세 사이에 아기를 가장 잘 가진다. 35세가 되면 임신능력은 크게 떨어져 42세엔 거의 바닥을 친다. 김씨의 경우 나이만 놓고 보자면 임신이 매우 어려운 상태였다.

10년 넘게 임신하지 못했던 김씨는 기와 혈을 보충해주는 치료 만으로 5주 만에 임신진단을 받았다. 치료과정에서 김씨는 평소 고질병처럼 안고 있던 소화불량이 없어지고 만성피로도 개선됐다고 전했다.


-4개월 추적관리 … 내년 2차 사업 준비도

인천한의사회는 사업에 참여해 치료를 받은 난임여성 96명을 대상으로 추적관리를 시작했다. 3개월 간 집중치료를 받았다 해도 체질이나 몸 상태가 쉽게 바뀌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4개월, 길게는 6개월의 사후관리 기간을 설정한 것이다.

인천한의사회는 최종적으로 96명 중 이미 임신에 성공한 8명을 포함해 총 15명 안팎이 임신될 것으로 보고 있다.

추적관리를 마무리한 뒤에는 1년 간의 치료경과를 정리해 연말쯤 임상보고서를 만들 예정이다. 보고서에는 한방 난임치료 전과 후, 인공·체외수정 성공률 등의 지표도 포함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한의학계에선 난임치료에 관한 체계적인 임상보고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인천한의사회가 작성할 임상보고서는 일정한 기간을 정해 많은 인원을 대상으로 동시에 난임치료를 진행한 보기 드문 예다.

인천한의사회는 올해 사업성과에 바탕해 내년에 2차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얼마 전 한 대기업에서 내년에 난임치료 사업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혀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 기업은 올해 5천500만원이었던 치료비 지원액을 크게 늘려 사업을 확장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천의 기초지자체들도 사업지원 의향을 보이고 있다. 인천 서구와 연수구, 중구청이 각자 관내에서 한방 난임치료 사업을 하자고 인천한의사회에 뜻을 전달한 상태다.

인천한의사회 황 부회장은 "난임은 불임과는 전혀 다르다. 불임은 의학적으로 임신이 불가능한 상태이지만 난임은 단지 아기 갖기가 어려울 뿐으로 치료와 노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난임여성들이 한방 난임치료를 통해 자신의 몸 상태를 정확히 알고 임신의 기쁨을 누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천한의사회의 한방 난임치료 지원사업은 지난 4월 시작됐다.

4월 각 지역 보건소를 통해 난임여성을 대상으로 진단이 이뤄졌고 인천한의사회 소속 한의원 32곳에서 5월부터 7월까지 집중치료가 진행됐다.

대한건설협회와 인천시가 총 치료비의 4분의 1인 5천500만원을 지원했고 인천한의사회가 나머지 1억5천만원을 부담해 무료치료가 이뤄졌다.

인천일보는 '난임, 한의학이 희망이다'란 주제로 연중기획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노승환기자 berita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