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정류장은 한산했다. 러시아워가 지난 시각이라서 그런 것 같았다. 곽병룡 상좌는 큰길가에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고만고만한 빌딩들과 잘 손질된 가로수들을 지켜보며 버스를 기다렸다. 그러다 그는 불현듯 생각난 듯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한 대 붙여 물고는 어제 저녁에 들었던 인구의 기자회견 목소리를 되씹었다.

 『저는 대한민국으로 넘어와 여러 도시와 농촌을 둘러 보았습네다. 보름 전에는 충청도 어느 민가에 들어가 농촌 사람들의 생활상을 둘러보다 점심 먹는 광경도 보았습네다. 그때 밥상에 차려진 음식은 이밥에 고기찌개가 맨 앞줄에 놓여 있었고, 밥상 중앙에는 상추, 고추, 쌈장, 김치, 멸치조림, 나물무침 등이 놓여 있었는데 공화국 인민들은 그렇게 잘 차려진 음식들을 명절날에도 먹지 못합네다. 그래서 저는 물어보았습네다.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 하면서. 그랬더니 그 집주인은 평소에도 늘 이렇게 먹는다고 하면서 뭐가 이상하냐고 오히려 저에게 되물었습네다. 저는 공화국 인민들은 평소에 강냉이밥에 김치, 염장무, 그리고 1년에 두어 번 동태찌개를 먹는다고 대답했더니 그 집주인은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그럴 리가 있겠느냐 하면서 오히려 저의 말을 믿지 않으려고 했습네다. 그 마을을 둘러보면서 또 하나 놀란 것은 집집마다 갖추어진 색 테레비와 전화, 냉장고와 창고에 쌓여 있는 쌀푸대, 그 밖의 잡곡을 담아놓은 곡식 자루들이었습네다. 그런 가전제품들과 곡식 자루들을 보면서 저는 남조선 농민들은 공화국의 군 당 책임비서(군수)들보다 경제적으로는 더 윤택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네다….』

 이놈이 그 사이 남조선 여러 도시와 농촌을 둘러보면서 인민들이 사는 모습을 자세히 본 것을 보면 국방군한테 총을 맞거나 사선 넘어가면서 지뢰를 밟아 불구가 된 것 같지는 않은데 어케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한테 길케 험한 말로 비판을 할 수 있을까?

 혹시 남조선 특무들한테 심한 고문을 당해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길케 말한 것이 아닐까?

 기래. 어쩌면 기게 맞을지 몰라…길치 않고는 그놈이 그런 정신나간 소리를 해댈 수가 없어. 암, 제 할아버지가 항일투쟁을 한 혁명가이시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히 돌보아주시던 항일혁명가 집안의 유자녀인데 그놈이 핏줄을 망각하고 길케 사상무장이 안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을 게야. 암튼 남조선으로 넘어가긴 했지만 건강하게 살아 있다니까 이자는 제 오마니도 한시름 놓갔구만….

 곽병룡 상좌는 구부정하게 선 채로 이 생각 저 생각을 다 해보다 허리를 폈다. 평양역이 서 있는 저쪽 역전거리 쪽에서 두 가닥의 전깃줄에 집전기를 매단 무궤도 전기버스가 다가왔던 것이다. 날이 흐려서 그런지, 무궤도 전기버스 지붕 위에 매달린 집전기에서는 번쩍번쩍 전기 스파크가 일어나면서 불꽃이 튀고 있었다. 그는 피우고 있던 담배꽁초를 비벼 끄며 버스 위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