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룡 상좌도 그 말을 듣고 보니 이렇게 헤어지는 것이 어쩌면 큰아버지를 마지막 보는 길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핑 돌았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십시오. 신풍서군으로 가더라도 평양 나올 일 있으면 꼭 큰아버지 찾아 뵙고 문안 인사 올리갔습네다.』

 『마음이야 낸들 어찌 천년만년 살고 싶디 않갔나만 기거이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이디…집에 가면 네 오마니한테도 안부 전하며 평양 와서 좀 편하게 살아보라고 일러라. 너희들 키운다고 평생을 고생하다 늘그막에는 좀 편하게 사는가 했는데 손자 때문에 또 고생하게 생겼으니 얼마나 마음이 쓸쓸하고 외롭갔는가. 대성산에 가면 네 아버지한테 꿈에라도 자주 가보라고 일러라.』

 『길케 전하갔습네다.』

 『기러구, 이건 네 처한테 갖다 주어라. 작은아버지 말처럼 기런 곳에 가더라도 돈은 좀 가지고 있어야 한다.』

 돈을 얼마나 넣었는지 건네주는 돈 봉투가 무게를 느낄 정도였다. 곽병룡 상좌는 사양하고 싶었지만 큰아버지로부터 받는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하고 돈 봉투를 받아 가방에 넣었다.

 『병룡아, 잘 가라. 이 큰어미도 이제 다 늙어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으니….』

 곽병룡 상좌의 큰어머니는 끝내 석별의 아픔을 감추지 못하고 대문에 기대어 흐느꼈다. 곽병룡 상좌는 큰어머니 앞으로도 다가가 고개를 숙인 뒤 작은아버지와 함께 승용차를 타고 칠골동을 나왔다.

 승용차는 광복다리와 팔동교를 지나자마자 낙원거리와 혁신거리를 내달려 비파거리로 넘어왔다. 2·8문화회관 앞을 지나가자 개선거리와 마주치는 큰 사거리가 나왔다. 승용차는 그 큰 사거리에서 사회안전부 청사가 있는 연못동 쪽으로 잠시 올라가다 국가보위부로 빠지는 삼거리에서 우회전해서 아미산도로를 따라 쾌속으로 달렸다.

 얼마 가지 않아 호위사령부 2총국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왔다. 직진신호를 받아 조금 더 달리자 당중앙(김정일)이 기거하고 있는 55호관저와 김일성종합대학으로 들어가는 삼거리가 나왔다. 승용차는 그 삼거리 앞에서 계속 직진해 주석궁과 김일성관저 쪽으로 빠지는 금성거리 사거리 앞에서 좌회전했다.

 곽병룡 상좌는 물끄러미 창 밖을 내다보다 높이 270m의 대성산 봉우리가 눈에 들어오자 주작봉 마루와 을지봉 쪽을 바라보다 스르르 눈을 감았다. 문득 소학교시절 소풍을 왔던 때가 생각났던 것이다. 그때 코흘리개 어린 소년들을 데리고 대성산성 밖에 있는 남문 입구까지 걸어온 교원은 『여러분, 이 대성산성은 고구려 장수왕이 도읍을 평양으로 옮기면서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장수왕 15년(서기 427년)에 쌓은 산성입니다』 하면서 을지봉 좌우로 힘있게 뻗어 내린 여러 봉우리들과 그 봉우리들을 연결하는 산 능선을 따라 쌓아놓은 7천76m의 산성을 가리키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