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주여성 구직 왜'하늘의 별따기'인가


"한국 국적을 얻고 한국어능력시험을 통과하면 뭐해요. 일 하고 싶어도 '하늘의 별 따기'인걸요." 한국 남성과 결혼해 이곳에 정착한 이주여성들이 입 모아 하는 얘기다. 그녀들에게 능력·노력의 정도와 취업률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 지난해 1월 현재 결혼이주여성 18만1천여명. 인천에는 1만1천여명이 살고 있고 그 자녀는 7천여명에 이른다. 똑같이 돈 벌며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싶은 결혼이주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직업은 경제력을 갖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잡기 위한 수단이다. 지난해 7월 인천시 남동구 소재'인천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를 찾은 이주여성들이 취업상담을 받고 있다. /정선식기자 ss2chung@itime.co.kr


부평구에 사는 A(32·여·필리핀)씨는 현재 남동공단의 한 제조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열 살, 여덟살배기 아이들 때문에 야간작업은 거의 놓치고 집에 오는 날이 태반이지만 그는 "이 일이라도 구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일하기 전까지 직장을 가지려고 좌충우돌한 기간이 워낙 길고 힘겨웠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한국 국적을 얻은 A씨는 남편 직장을 따라 2005년 부평구에 터를 잡았다.

첫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지난 2009년부터 고민은 시작됐다. 지출이 늘어난만큼 돈을 벌어야했는데 직업을 구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A씨는 오랜 한국 생활 덕에 큰 무리없이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는 만큼 금세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일을 구하려면 어디서 어떻게 정보를 얻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가게나 버스정류장에 내건 구인광고를 찾아 가까운 동네부터 걸어다녔다.
 

   
▲ 결혼이민자 취업 여부(단위:%, 명) /출처: 보건복지부, 2009년 전국 다문화가족실태조사 연구


"필리핀에 있을 때 옷을 꿰매고 만드는 일을 해본 적 있기에 이왕이면 옷 수선이나 봉제 일을 해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동네 곳곳을 살펴봐도 원하는 일은 보이지 않더라고요."

한국에 온 뒤 틈틈이 공부해 한국어능력시험도 통과한 상태지만 그를 받아주는 일터는 찾기 어려웠다. 아직 자유자재로 의사소통하기는 힘든데다 피부색까지 다르다보니 가장 문턱이 낮다는 식당에서조차 A씨를 꺼렸다.

한 번은 지하철 광고란에 붙은 '사무직, 월 200만원 보장, 남녀노소 불문' 쪽지를 보고 전화해 봤다. 성별과 나이를 따지지 않고 일 시켜주겠다던 그 회사에서도 외국인은 '사절'이었다.

"전화 상담 일이라 한국사람이 아니면 안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너무 지치더라고요."

그러다 2009년 말 아는 사람의 소개로 남동공단의 한 제조업체에서 일하게 됐다.

새벽에 일어나 가족들 아침밥을 지은 뒤 103번 버스를 타고 한시간씩 걸리는 곳을 매일 출퇴근하지만 그는 직장을 얻은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물가가 오르고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A씨의 일터는 상황이 나빠졌다.
 

   
▲ 결혼이민자 직종(단위:%, 명) /출처: 보건복지부, 2009년 전국 다문화가족실태조사 연구


만약 직원을 정리한다면 외국인 직원 중 유일한 여성인 A씨는 해고 1순위일 것이다.

집 근처 중국집에서 일하는 B(35·여·중국)씨는 그나마 상황이 낫다. 일한 시간만큼만 최저임금을 받는 '아르바이트'지만 그에게는 모자람없는 '직장'이다.

스무살 때 한국에 와 15년을 산 B씨는 겉보기뿐만 아니라 생활도 한국사람과 거의 똑같다. 종교시설에서 알음알음 한국어도 배우고 동네 결혼이주여성들과도 가끔씩 모여 얘기도 나누다보니 '정보통'이 다 됐다. 덕분에 아는 사람의 소개를 통해 그녀는 비교적 쉽게 중급 규모 중국집에서 음식 나르는 일을 하게 됐다.

하지만 B씨가 알고 있는 다른 이주여성들의 '취업담'을 들어보면 느낌이 전혀 다르다.

"그나마 저는 생김새·말투가 한국인과 큰 차이가 없어 식당 일이라도 구했죠. 베트남 언니 한명은 내근직을 구한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다짜고짜 옷을 갈아입히더니 노래방 도우미 일을 시키길래 기겁해서 나온 적도 있어요."

일 알려준다며 돈을 선불로 챙겨가고 연락이 끊긴 동포, 일은 하지만 아이들 숙제·공부를 봐주지 못해 고민인 여성 등 이야기는 끝도 없다.

최근 몇년 사이 각 군·구에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생기면서 이주여성의 취업 연계사업을 펴고 있다. B씨도 이 내용을 알고 있을까.

B씨는 "알고는 있지만 활용할 생각은 안해봤다"며 "전문직이면 모를까 어차피 센터에서 연계해주는 일자리 중 태반이 식당같은 서비스직일텐데 굳이 옮길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2009년 보건복지부가 전국결혼이민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를 보면 식당 등 서비스 직이 약 30%, 단순노무직이 약 20%를 차지했다. <표 참조>

현재 인천은 옹진군을 뺀 나머지 군·구에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설치돼 있다. 센터에서는 취업연계와 함께 한국어교육, 취업능력 향상교육, 가족통합 프로그램 등을 실시하고 있다.

올해부터 시는 결혼이주여성의 취업률 향상을 위해 일자리 수를 늘리고 업체와 구직여성을 연계하는 등 여러 방안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아직 효과를 점치기는 이른 상황이다.

일단 새로 만든 일자리에 이주여성이 취업한 사례는 매년 늘고 있다. 지난해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종사자나 방문교육 지도사, 언어발달지도사 등으로 일한 이주여성은 109명이었지만 올해 221명으로 2배 가량 늘었다.

언어영재교실의 이중언어강사, 다문화가족 통역도우미는 올해 처음으로 35명을 뽑았다.

이 중 시가 올해부터 경인교육대학교과 함께 시작하는 다문화가족 통역도우미는 다음달~11월 양성교육을 통해 군·구와 경찰서 등 공공기관, 학교 방과후 강사, 2014년 아시안게임 참가선수단 통·번역가로 활동하게 된다.

이주 여성들이 갖고 있는 능력을 살린 일자리가 생겨나고 있지만 많은 이들을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를 보완하고 더 많은 여성들의 취업을 지원하고자 각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실시하는 취업연계사업도 한계가 있다.

이주여성을 뽑아 쓰려는 업체가 센터에 연락하면 구직여성과 연계, 직업을 갖도록 돕는 사업인데 연락하는 업체 대부분이 서비스 직종이다. 기본적인 수준의 일자리 연계는 되고 있지만 전문성과 개성을 살린 취업연계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기돈 이주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언어교육이나 문화 소개 등 모국에서 배운 전공이나 전문성을 살려 취업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고 이주여성 대부분이 식당이나 단순노동에 종사하고 있다"며 "이주해 온 사람들의 비율이 높아진만큼 그들이 한국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며 살 수 있도록 돕는 게 곧 함께 발전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유예은기자 yum@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