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렵, 곽병룡 상좌는 평양시 중구역 창광거리에 있는 고층아파트에서 곽병호 과장과 마주 앉아 있었다. 곽병호 과장은 안해가 잠자리를 봐 주고 살림방으로 건너가자 건넌방 출입문과 창문을 꼭꼭 닫아걸고는 창문보(커튼)를 가렸다. 그리고는 책상 위에 올려놓은 카세트 라디오와 리시버를 들고 왔다.

 『들어보시라요.』

 곽병호 과장이 카세트 라디오 속에 녹음테이프를 넣고 형을 쳐다보았다. 곽병룡 상좌는 피우고 있던 담배를 비벼 끄며 리시버를 꼈다. 낄낄낄 녹음테이프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느닷없이 인구의 기자회견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약 공화국 인민들이 남조선 주민들의 실생활을 저처럼 다 둘러본 뒤 단 하루라도 휴전선을 개방해 놓고 「제가끔 살고 싶은 곳에 가서 살아라」 하고 선전한다면 2천만 공화국 인민들 대다수는 저마다 남조선으로 내려오느라 길은 인산인해를 이룰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네다.

 그런데도 공화국의 당 고위 간부들과 선전선동 부문의 핵심 일꾼들은 수령 동지와 김정일 동지에게 거짓보고를 하고 있으며, 그 보고를 받은 수령 동지와 김정일 동지는 「우리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하루 빨리 남조선 인민들을 구출해야 된다」고 오늘도 북조선 인민들을 기만하면서 혹사시키고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끓어오르는 울분과 분노를 참을 수가 없으며, 자유스러운 남조선 사회를 모르고 김일성·김정일 파쇼 도당에 속아 오늘도 생지옥 같은 북한 땅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는 공화국 인민들을 하루 빨리 구해 줄 것을 대한민국 국민들과 기자 여러 분들께 간곡히 호소해 봅네다.

 아울러 제가 공화국 인민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은 「악마 같은 김일성·김정일 도당들에게 더 이상 속지 말고 하루 빨리 그들의 파쇼체제를 반대하는 투쟁에 나서 달라」는 것을 목이 터지게 외치고 싶습네다.

 끝으로, 저는 조국 통일을 위하여 저의 모든 것을 바치겠으며, 새로운 삶을 배우고 열심히 일하여 조국 수호에 헌신하겠다는 것을 이 자리에 계신 기자 선생님들께 굳게 결의하면서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겠습네다. 대한민국 만세!

 인구의 만세 소리가 귓속을 후벼파는 것처럼 아픔을 더해왔다. 곽병룡 상좌는 카세트 라디오의 스위치를 눌러 녹음테이프를 꺼내며 꺼질 듯이 한숨을 쉬었다.

 『후유, 이 일을 어케야 좋은가?』

 여태껏 자식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도 못 듣고 있다 녹음기를 통해 인구의 목소리를 듣고 보니 이놈의 자식이 아직도 죽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래도 끝까지 참으며 기자회견 내용을 다 듣고 보니 참으로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자기 자식의 입에서 어떻게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를 비방하는 소리가 나올 수 있는가 말이다. 그는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에게 큰 죄악을 범한 것 같아 동생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