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그렇다면 저도 언젠가는 북한에 두고 온 부모형제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좀더 기다려 봐야겠습니다.』

 『그럼요. 연로해 돌아가시지만 않았다면 남북 관계가 평화무드로 전환될 때까지라도 기다려 봐야겠지요. 억지로라도 희망을 가지면서 말입니다.』

 오경택씨는 억지로라도 희망을 가지라는 말이 우스운 듯 허탈하게 웃었다.

 『언젠가 미국 영주권을 가진 우리 교포 한 분을 택시에 모셨는데 6·25 때 북으로 끌려간 전쟁포로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억류되었던 귀환포로들을 북한 당국은 함경도 아오지 탄광 속으로 밀어 넣었다는 말도 있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저희들도 최근 들어 함경도 지역에 거주하다 월남한 귀순자들로부터 그런 첩보를 입수하고 다각적으로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아무래도 88서울올림픽이 끝나야 중국쪽 소식통을 통해 어느 정도 윤곽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빨리 남북교류라도 되어야 북에 계시는 우리 오마니 아바지가 돌아가셨는지, 아직도 살아 계시는지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시기가 언제쯤 될 것 같습니까? 북한은 국제사회를 향해 문호를 개방하면 스스로 자멸한다는 등식 때문에 계속 폐쇄주의를 지향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북쪽 정책 당국자들도 변화의 물결을 수용할 날이 올 것입니다. 국제사회의 새로운 물결을 수용하지 않으면 당면한 식량문제 때문에 그들은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오늘, 이렇게 귀중한 시간을 내어 주시고 좋은 말씀까지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헤어지기 섭섭해서 그런데 마지막으로 제 술 한 잔만 더 받으시지요.』

 정동준 계장은 마지못해 또 술잔을 받았다. 오경택씨가 술을 따르며 물었다.

 『아까 얘기하다 만 곽인구씨 영어 개인교습문제는 내일부터라도 우리 기문이가 시간을 내어 가르쳐 드리면 되갔지요?』

 『그것보다 저희 집으로 오기문 학생을 개인지도 교사로 초빙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래도 괜찮고요.』

 정동준 계장은 인구의 영어 보충학습문제를 그런 식으로 매듭짓고 집으로 돌아왔다. 인구는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손발을 씻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송영주가 과일을 깎아 거실로 나오며 방으로 들어간 인구를 불렀다. 인구는 책이나 보다 그냥 자겠다고 했다.

 『오늘 인구 삼촌 표정이 많이 어두워 보이는데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었어요?』

 『오기문 학생 아버지가 북에 남겨 두고 온 노부모 이야기를 꺼내며 가슴아파 하니까 저 녀석도 덩달아 울적한 모양이야. 오늘 저녁은 혼자 있게 그냥 내버려 둬.』

 송영주는 그제사 인구의 기분을 알만한 듯 혼자 고개를 끄덕여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