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전동차에 모녀간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탔다.

하나밖에 없는 빈자리를 놓고 어머니는 딸에게 그 자리에 앉으라고 성화다.

젊은 딸이 짜증을 내다시피 하며 자리에 앉기를 거절하니 어머니는 딸에게 미안하듯 하며 마지 못해 앉는다.

소년법원에서 보호관찰 처분결정을 받으면 해당소년은 보호자와 함께 보호관찰소에 출석하여 개시신고를 한다. 신고서를 작성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견본이 마련되어 있는데도 소년을 대신해 부모가 신고서를 작성해준다.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는 문제로 나라가 시끄럽다.

무상급식 여부라는 정책의 본질보다는 특정학생이 빈곤가정 출신이라는 낙인(오명 Stigma)으로 상처를 입을까봐 걱정하는 쪽으로 쟁점이 기울고 있다.

빈자리가 있으면 당연히 나이 드신 어머니가 먼저 앉아야한다. 보호관찰을 받은 자녀는 신고서를 직접 작성하면서 부모님께 뉘우침을 보여야 한다. 무상급식 혜택을 받은 초등학생은 '좀 창피했는데 그래도 공짜 밥을 먹으니 다행'이라며 어른들의 성급한 우려와는 달리 정작 본인은 담담하다.
이런데도 우리 어른들은 자녀들에 대한 과보호를 경쟁이나 하듯이 하며 산다.

몇 해 전 '성공하는 10대들의 7가지 습관' 저자인 숀 코비 박사가 방한하여 청소년과 학부모, 교사들을 대상으로 '주관을 갖고 어려운 문제들을 극복하는 방법'을 강연했다.

그는 "많은 청소년들이 문제가 있을 경우 바깥에서 그 원인을 찾지만 모든 것은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남 탓만을 하는 사회풍조에서 자기책임을 강조한 강연이었지만 이를 조장한 어른들을 향한 충고로 들렸다.

그동안 우리는 청소년 문제를 논할 때면 주인공인 청소년은 빠지고 늘 가정, 학교, 사회 등 다른 사람 혹은 주변 환경 등에만 그 원인과 책임을 전가하였다. 아무리 미성숙한 청소년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결정과 행동에는 자기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인식이 일반화돼야 한다.

어린 시절에 나쁜 습관이 형성되면 장차 그 개인이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부모가, 사회가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자녀들이 결정하고 행동하며, 그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도록 어른들이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 보자.

그들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믿어보자. 그런 뒤 그들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조언하고 잠재력을 계발해 주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이고 어른들의 몫이다.

/노청한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