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순은 남자들이 야밤에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여자들을 끌고 가 겁탈한다는 소리에 질려 소변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하의를 까 내린 채 덜덜덜 몸을 떨어 댔다.

 그때였다. 먼저 소변을 보고 일어나 망을 봐주던 옥남 언니가 집 모퉁이 쪽을 지켜보며 급하게 소리쳤다.

 『누구네?』

 복순은 소변을 보다 말고 급히 하의를 끌어올리며 옥남 언니 곁으로 다가섰다. 자신도 모르게 몸이 와들와들 떨리며 심장이 멎는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옥남 언니는 다가서는 복순을 한 손으로 감싸 안으며 품속에 넣고 다니는 호신용 고춧가루 봉지를 꺼냈다.

 이곳 젊은 여자들은 대다수가 이런 호신용 고춧가루 봉지를 속곳 주머니나 허리춤에 차고 다녔다. 고춧가루 봉지를 마련하지 못한 여자들은 긴양말(스타킹)에다 차돌을 넣어 만든 차돌주머니를 차고 다니기도 했다. 고춧가루 봉지는 여자들을 겁탈하려고 남자들이 몰려오면 안면에다 뿌려버리고 급히 피신하는데 썼고, 차돌주머니는 철퇴처럼 빙빙 돌리면서 남자들의 접근을 막는데 썼다. 그렇게 시간을 끌면서 소리를 지르면 여기저기서 이웃 사람들이 쫓아오기 마련이고, 남자들은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 것을 우려해 슬금슬금 달아나기 마련이었다.

 『옥남이네? 나야, 옆방 은주야.』

 『저 간나, 저거, 아이구!』

 옥남 언니는 다가온 옆방 은주와 윤정이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하필이면 그들이 소변보러 나왔을 때 집 모퉁이에서 나오며 사람을 십 년 감수하게 만드는가 말이다. 그녀는 다가온 은주를 바라보며 눈을 흘겼다.

 『야밤에 기척도 없이 무슨 짓이야? 간 떨어질 뻔했다, 간나야.』

 『미안해. 남새밭에 심부름 갔다가 얻어 온 무 생각이 나서 잠이 와야지…이왕 나왔으니 무나 한 쪽 먹고 들어가.』

 옆방 은주가 집 뒤 움고에 숨겨둔 무를 들고 나오며 복순을 빤히 쳐다봤다.

 『이 사람이 새로 왔다는 동무야?』

 『기래. 내일부터 우리 로동중대에 편입 돼 같이 일할 성복순 동무야. 나이는 아마 우리 보다 대여섯 살 아랠 거야. 기러니까니 고향집 동생 보듯 서로 허물없이 지내며 잘 봐 줘. 내년 봄이면 나갈 사람이야.』

 옥남 언니는 옆방에 기거하는 은주와 윤정에게 복순을 소개시켰다. 은주와 윤정은 한집에서 같이 생활하게 되어 반갑다며 무나 한쪽 먹고 들어가라고 두 사람을 붙잡았다.

 『옥남 언니, 우리한테 덮어씌우려고 고춧가루 봉지까지 꺼내들고 있었어?』

 은주는 옥남 언니가 꺼내 들고 있는 고춧가루 봉지를 바라보며 눈을 흘겼다. 가관치도 않다는 표정이었다. 그들은 달빛 아래서 까르르 웃으며 무를 깎아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언니, 언니. 우리 내일 밤에는 남새밭둑에 심어 놓은 콩 좀 뽑아 와 구워 먹자? 고향에서 콩서리 해 먹던 생각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