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요. 6·25 때 단신 월남하신 분들은 남쪽에 내려와 삶의 기반 잡느라 대개가 자식들이야 늦지요. 그래도 다복하십니다. 자식들도 아들 딸 고루고루 두시고 따님과 아드님들이 명석해 공부까지 잘한다니 그보다 더 즐거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정동준 계장이 기문과 기영을 바라보며 월남 1세대들의 고생담을 위로해주자 오경택씨는 힘이 생기는지 또 말을 받았다.

 『그걸 뭐, 다복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암튼 자식들은 부모 속 썩이지 않고 잘 커준 편입니다. 이제 남은 소원이 있다면 북에 계시는 애들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직도 살아 계시는지, 만약 살아 계신다면 어느 하늘 밑에서 살고 계시는지 소식만이라도 들었으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오경택씨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메이는지 앞에 놓인 술잔을 비웠다. 정동준 계장은 그의 술잔을 채워주며 위로했다.

 『우리 민족의 분단문제를 청산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고 공직에 들어와 대북 관련 정보를 취급한 지 십수 년이 넘었습니다만 실향민들로부터 그런 가슴아픈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절로 죄를 지은 심정이 됩니다. 남북이 분단된 지 올해로 꼭 37년째가 되는데 아직도 정부는 북에 두고 온 실향민 가족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서로 연락할 수 있는 주소는 커녕 생사확인소식조차 전해 드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니….』

 『그, 남북적십자회담인가 뭔가 하는 것은 언제 또 열릴 것 같습니까?』

 『공직자로서 입에 담을 소리는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북의 요구조건을 6·25 체험세대들의 반대 여론에 밀려 우리 정부가 수용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적십자회담이 열려도 결실은 전혀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냥 통일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의지를 북한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전하는 하나의 정치 쇼라고 할까요. 대충 마, 그렇게 보면 크게 틀릴 것이 없을 겝니다.』

 『대관절 저쪽에서는 뭐를 그렇게 요구하기에 아직도 실향민 가족들의 주소와 생사 관련 소식도 주고받을 수 없습니까?』

 오경택씨는 가슴이 저린다는 표정으로 또 술을 털어 넣었다. 정동준 계장이 말했다.

 『북한 당국의 요구조건이란 게 늘 그렇지요. 주한미군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이 두 조건이 우리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아킬레스건입니다.』

 『망할 놈들! 미얀마까지 따라와 일국의 대통령과 장관들을 대상으로 폭탄테러까지 자행하는 놈들이 국가보안법과 주한미군을 철수하라고요? 그건 결국 6·25 체험세대가 살아 있는 동안은 남북교류를 하지 않겠다는 억지소리 아닙니까?』

 『그렇지요. 적당한 긴장국면만 유지하면서 2천만 북한주민들이 외부세계와 교감하는 걸 최대한 막아보자는 정치적 술수지요.』

 『내 나이 벌써 내일 모레면 예순인데 아직도 부모님께 안부편지 한 장 전하는 것도 현재로서는 기약할 수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