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인천세관 이대로 사라지나


1917년부터 2010년까지 만 93년. 인천항 첫머리를 지켜온 옛 인천세관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전쟁의 포화에서도 '살아남았던' 건물들이 이제 창고 하나만 남고 다 철거됐다. 중구 항동 7가 인천항 제 1부두 앞, 세관청사와 창고를 허문 그 자리엔 전철역과 LPG 가스 충전소가 들어서기로 돼 있다. 개발지상주의와 무관심 속에 인천 근대사의 뿌리가 뽑히고 있다. 끊임없이 인천의 과거를 지우고 있는 이 '집단적 기억상실', 언제까지 되풀이 될 것인가.

 

   
▲ 100년 가까이 된 옛 인천세관 마지막 창고가 수인선 전철공사로 인한 철거 위기 속에 위태롭게 서 있다. /박영권기자 pyk@itimes.co.kr


▲'인천경제 산 증인' 창고 하나 남기고 철거

"한국전쟁 뒤 다시 세워진 세관청사가 있던 1959년부터 2010년까지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에서 2만달러로 올랐어요. 흔히 '한강의 기적'이라 하지만 인천에선 옛 세관청사와 그 터가 경제발전의 산 증인이에요. 그런 건물을 저렇게 막 허문 걸 보면 인천이 지금 뭐가 한참 잘못됐구나 싶지요."
지난해 세관청사 철거현장에서 머릿돌을 가져와 보관해온 이병화 (사)인천문화발전연구원 이사장의 말이다.
세관청사 자리에는 청사 본관과 일제시대 선거계·화물계 사무실, 창고 3동 여섯 개 건물이 있었다. 이 중 창고 한 동만 남기고 1년 남짓 만에 다른 다섯 동이 전부 헐렸다.


▲인천시, 부지매각·철거 수수방관

특히 세관청사 본관 철거과정은 근대유산에 대한 인천의 무감각을 여실히 드러냈다.
한국전쟁 후 1959년 신축된 청사 본관은 지난해 철거 전까지 인천지방해양항만청이 직원숙소로 써왔다. 항만청은 숙소가 부족하다는 판단에 2006년 12월 본관 부지의 매각공고를 냈다. 하지만 사겠다는 사람이 없자 2009년 1년 다시 공고해 그 해 7월 매각을 마쳤다.
땅을 산 개인은 항만청에 땅값 대신 직원 숙소용 오피스텔들을 넘기고 소유권을 넘겨 받았다.
매입목적은 LPG 충전소 건립이었다. 충전소 건립은 처음부터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우선 78m 거리에 인천시 지정문화재 인천우체국이 있어 관련 규정 상 충전소 설치가 불가능했다.
부지가 인천항과 맞닿은 일명 '임항지역'이란 사실도 논란거리였다. 사실상 공유지인 임항지역에 개인이 수익시설인 충전소를 지은 적이 거의 없고 향후 인천항 재개발 예정지에 이 땅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천항 관리기관인 항만청은 매각과정에서 개인의 매입목적과 타당성을 따져보지 않았다.
인천시는 이 땅이 임항지역에 속해 개입이 어렵다는 이유로 세관청사 부지매각이나 철거에 아무 문제제기를 안했다.

 

   
▲ 지난해 옛 세관청사가 철거된 뒤 그 부지는 현재 사설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박영권기자 pyk@itimes.co.kr


▲건축양식 가치 없으면 헐어도 되나

마지막 남은 세관창고를 둘러싼 상황 역시 인천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창고는 세관청사 본관 길 건너 부지에 서 있다. 창고는 원래 3개 동이었다. 이 자리에 들어설 수인선 국제여객터미널역 역사 신축이 진행되면서 지난해 2개 동이 철거됐다.
'공사에 방해가 될 뿐더러 건축양식 상 문화재로 지정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게 당시 인천시의 판단이었다.
인천과 인천항 역사에서 세관창고가 갖는 의미가 아니라 건축양식이 철거기준이 된 것이다. 남은 창고 한 동은 지붕 처마의 양식이 특이하다는 이유로 헐리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창고마저 곧 헐릴 처지다. 수인선 설계상 이 창고를 허물어야 출입구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이다.
시는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창고를 헌 다음 전철 출입구에 창고 벽체를 덧붙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속은 전철역 출입구로 만들고 겉에만 옛 창고모습을 남기겠다는 계획이다.


▲근대 역사문화정책 재검토 계기 돼야

이 창고가 사라지면 100년 역사를 가진 옛 인천세관의 흔적은 거의 남지 않는다.
인천세관의 전신 '인천해관' 외국인 근무자 묘비(연수구 청학동)와 세관청사 본관 머릿돌, 과거 선거계와 화물계 사무실 건물 정도다.
익명을 요구한 인천의 한 문화계 인사는 "4~5년 전 근대건축물을 몇 십억씩 들여 복원하겠다고 했던 인천시의 '근대건축물 창조적 복원사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인천항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세관청사가 헐리는 마당에 고증도 제대로 안 된 건물을 되살리겠다고 한 것 자체가 촌극이었다. 인천의 근대역사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전환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노승환기자 todif77@itimes.co.kr



■ 인천세관 청사 발자취

 

   
 

옛 인천세관 청사의 역사는 191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국주의 일본은 인천항 제 1부두 도크를 만들면서 인천세관 청사를 새로 지었다. 식민지 수출입을 통제할 목적으로 1883년 개항 후 운영돼온 '인천해관'을 대체해 이 건물을 만들었다.
아울러 1부두를 관리하는 선거계와 화물계 사무실, 창고 3동을 신축했다. 당시 이 곳으로 인천항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과 화물이 거쳐갔다.
세관청사는 식민통치 기간, 해방 후 미군정기 내내 활용되다 1950년 일어난 한국전쟁 때 완파됐다.
그 자리에 1959년 한국 정부가 지상 2층 신식청사를 지었다. 정부는 1960년대 3층으로 청사를 증축됐다. 이후 1992년 인천본부세관이 중구 신흥동 인천항 제 3부두 옆에 청사를 확장·이전하면서 청사는 기능을 다했다. 1992년부터 옛 세관청사는 인천지방해양항만청 숙소로 쓰였다.
그러다 2006년 철거논의가 시작됐다. 항만청이 그 해 12월 직원 숙소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청사부지에 대한 공개매각 공고를 냈다. 결국 청사부지는 2009년 7월 매각됐다.
2010년 옛 세관청사는 전면 철거되기에 이른다. 이 땅에 LPG 가스 충전소를 짓겠다던 사업자는 인천시의 충전소 불허방침에 현재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100년 역사의 세관청사 부지에선 현재 충전소 사업자가 운영하는 사설 유료주차장만 남아 있다.
/노승환기자 todif77@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