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택씨가 부엌방 쪽에다 대고 소리쳤다. 그러자 부인이 딸과 함께 저녁상을 차려 들고 왔다. 인구는 오기문 학생의 어머니와 누나가 들고 오는 저녁상을 바라보다 자신도 모르게 입을 딱 벌렸다. 밥 한 끼 먹는데 뭐 그렇게 음식을 많이 차려 오는가 말이다. 북한의 잔칫집 큰상보다 잘 차린 진수성찬 같았다. 오경택씨는 술도 가지고 오라면서 어서 먹자고 했다. 정동준 계장과 인구는 저녁상이 놓인 거실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급히 연락을 받고 준비하느라 많이 차리지는 못했습니다만 많이 드시고 앞으로 자주자주 놀러 오십시오. 우리 기문이와 한반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 량반은 뭐가 그리 좋은지 한 이틀간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오기문 학생의 어머니는 정동준 계장과 인구를 보며 자기 집을 방문해 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하며 오경택씨의 옆구리를 찔렀다.

 『식기 전에 어서 좀 권하세요. 술도 한 잔씩 나누시면서.』

 오경택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정동준 계장에게 술잔을 건넸다.

 『박주지만 우선 술부터 한 잔 받으시지요.』

 『네네. 오늘 이렇게 저희들을 위해 성찬을 차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정동준 계장은 인구와 같이 오경택씨가 부어주는 술을 받았다. 그리고는 술 주전자를 받아 오경택씨의 술잔에도 술을 따르며 앞으로는 서로 흉허물없이 지내면서 자기 집에서도 저녁을 한 끼 같이 먹자고 제의했다.

 『아, 좋습니다. 선생님께서 불러만 주신다면 언제라도 달려가겠습니다. 자,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우선 목부터 추기시지요.』

 오경택씨는 인구의 술잔에다 잔을 부딪치며 무사히 사선을 넘어온 것을 축하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북에 있는 가족들이 그 소식만 들어도 기뻐 못 견딜 만큼 성공하라고 했다.

 『아, 그러고 보니 딸아이 소개하는 걸 빠뜨렸네. 기영아, 정선생님께 인사드려라. 이 분은 곽인구씨의 법적 후견인이시고 북에 있는 네 할아버지 할머니 같은 분들을 위해 정부기관에서 많은 일을 하고 계시는 분이다.』

 『안녕하세요. 기문이 둘째 누나 되는 오기영입니다.』

 오경택씨는 기문의 누나가 자기 소개를 하며 인사를 끝내자 가족 소개를 했다.

 『저는 60이 다 되어 가는 나이지만 6·25 때 단신 월남해서 고생고생 하느라 또래에 비하면 자식을 늦게 가진 편입니다. 큰딸은 작년에 결혼해서 현재 잠실에 살고 있고, 이 애는 둘째인데 대학 2학년입니다. 막내 기문이는 두 누이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성정이 사내답지 못해 나한테 혼쭐이 날 때는 더러 있어도 공부는 전교에서 1∼2등을 다툴 만큼 잘하는 편입니다. 기러니까 곽인구씨 영어공부 하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염려 마시고 이제 저녁밥이나 드시지요.』

 기문이가 학급에서도 말발이 센 배경을 그제서야 알았다는 듯 인구는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