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 연휴 연평도의'눈물'


설 연휴를 맞은 연평도 주변으로 뿌옇게 안개가 서렸다. 석 달 전의 참상을 감추려는 것일까. 그래도 연평도 주민들의 얼굴에는 그날의 아픔이 가득했다. 설 연휴 기간에 찾은 연평도에선 명절 분위기를 찾을 수 없었다. 일부 주민들만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주민들은 "아무 것도 없다"고 했다. 김포 양곡의 임시거주지에 머무는 주민들은 "돌아가고 싶어도 살 수가 없다"고 말한다. 연평도 주민들의 설은 쓸쓸한 기운이 감돌았다. 연평도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 연평도에서 민박을 운영하는 최옥선(57)씨가 지난 5일 오전 북한의 포격으로 부서진 집 사이를 걸어가고 있다. /연평도=박진영기자 erhist@itimes.co.kr


지난 4일 오후. 안개는 여전히 섬 전체에 걸쳐 있었다. 지난 3일엔 짙은 해무때문에 배도 뜨지 못했다. 연평도 선착장은 배에서 내리거나 타는 주민들로 가득찼다. 섬에서 설을 보낸 일부 주민과 뭍에서 보낸 사람들이 서로 스쳐갔다.
이날 입도한 주민 수는 81명. 주민들은 선착장에서 저마다 짐을 들고 집으로 흩어졌다. 짐을 가득 들고 연육교를 건너던 중 한 주민이 차에 태워주겠다며 기자를 불렀다.
"여긴 뭣하러 왔어요? 아무 것도 없는데. 다들 육지로 나가서 안들어왔어요."
주민의 말대로 마을에는 스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연평대로를 따라 걸었지만 간혹 돌아다니는 개들만 꼬리를 흔들며 다가올 뿐이었다. 횟집 앞에 놓인 어항 속에는 말라붙은 물고기가 들어있었고 깨진 유리조각들은 바닥에 흩어졌다. 군용트럭은 군인들을 싣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갔다.
조선비(78) 할머니는 "내 평생 연평도에서 이런 명절을 보내긴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새배를 하러 돌아다니는 꼬마들도 집집마다 고소하게 올라오는 음식 냄새도 없다는 것이다. 되려 오가는 사람도 드물 정도였다.
조 할머니가 "자식들이 차례를 지내러 섬에 왔지만 이웃이 없어 쓸쓸한건 어쩔 수 없지 않겠어?"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한 주민도 맞장구를 치며 "뭍에 간 사람들은 왜 안오는거야. 후딱 섬으로 돌어와야지"라고 했다.
몇몇 공무원들은 면사무소에서 근무를 서고 있었다. 비상 사태이기 때문에 연휴에도 3~4명이 돌아가며 숙직을 선다고 했다. 한 공무원은 "주민들이 모두 육지로 나가 기사거리도 없을텐데…"라며 커피를 내밀었다.
면사무소에 확인해보니 이날 연평도에 남은 주민은 237명. 북의 포격이 있기 전까지 연평도에서 살았던 주민 수는 1천300여명이다. 아직 주민 1천여명이 고향을 찾지 못했다. 면사무소 관계자는 "창문은 대부분 교체했지만 부서진 집들은 아직 손도 대지 못했다"며 "7일부터 얼어붙은 수도와 보일러를 고치기 시작하면 주민들이 돌아오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집이 부서진 주민들을 위해 연평초등학교 옆에 마련된 목조 조립주택에도 인적이 뚝 끊겼다. 39동 중 1동만 불을 밝히고 있을 뿐이었다. 18가구가 입주했지만 대부분 뭍으로 설을 보내러갔다.
북의 포격이 있고 나서 석 달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마을 곳곳에선 포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승용차는 처참하게 나뒹굴고 포탄을 정통으로 맞은 집은 뼈대만 간신히 남아있었다.
주민들이 반찬거리를 사던 슈퍼마켓의 문은 굳게 잠겼다. 어민들이 탁주를 마셨을법한 술집과 식당들도 마찬가지였다. 편의점과 몇몇 민박집만 섬에 들어오는 외부인을 상대로 장사를 했다.
민박 주인 최옥선(57)씨는 방 열쇠를 내놓으며 "연평도에선 설 음식은 커녕 반찬거리를 구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문을 연 가게가 없다는 것이다. 최씨는 민박집을 찾는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인천에서 재료를 직접 구해오고 있었다. "그나마 보일러와 수도가 멀쩡해서 장사하는거야. 설 분위기는 내지도 못했지."

   
▲ 지난 5일 한 주민이 인천과 연평도 사이를 운행하는 코리아 익스프레스호에서 내린 뒤 연평도 선착장으로 올라가고 있다. /연평도=박진영기자 erhist@itimes.co.kr

섬 전체가 조용한 가운데 일부 주민들은 휴일에도 굴을 따러 갯벌로 나갔다. 연육교 아래 펼쳐진 갯벌에는 주민 4명이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일하고 있었다. 갯벌에서 만난 조순옥(78) 할머니는 김포 양곡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다가 지난 4일 나왔다고 한다. "아파트에 갖혀있다보니 너무 답답했다"며 "차라리 섬에서 일하는 게 마음 편하다"고 했다.
최두규 연평파출소장은 "연평도는 범죄가 없는 아름답고 조용한 섬"이라며 "다시 옛 모습을 찾으려면 주민들이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포 양곡의 임시거주지에서 사는 주민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대다수 주민들이 설을 쇠러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갔다. 설 연휴 기간 동안 임시거주지에는 갈 곳 없는 주민 100여명만 머물렀다.
주민들은 지난 3일 김포 애기봉에서 합동차례를 지냈다. 따로 차례를 지낼 여력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연평도주민비상대책위원회(연평 비대위)는 당초 아파트에서 새배 행사를 열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요리를 담을 그릇도 없다는 이유로 취소했다.
상당수 주민들은 즐거운 명절 분위기를 느끼기는 커녕 아직까지 정신적인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밤마다 포탄이 떨어지는 꿈을 꾸는 주민도 있었다.
임시거주지에서 머물고 있는 김영애(51·여)씨도 그 중 하나다. 김씨는 "섬에서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즐거웠지만 지금은 너무 무섭다"며 "포탄이 모든 것을 망쳐놓았다"고 호소했다. 지금까지 연평도 주민 300여명이 전쟁 공포로 심리지원센터를 방문했다. 김씨가 남편을 연평도에 보내고 임시거주지에 남아있는 이유도 공포 때문이다.
김씨는 여전히 섬에 들어가고 싶어한다. "섬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주민이 어디있겠나. 아직 여건이 안된다"고 했다. 피해 복구가 늦어지는 탓도 있지만, 언제 다시 포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장소에서 마음놓고 살 수 없다는 이유가 더 컸다.
임시거주지에서의 생활은 지난해 12월 인천시와 연평 비대위의 합의에 따라 오는 18일이면 끝난다. 주민들은 섬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거처를 찾아야 한다.
연평 비대위는 임시거주 기간이 끝나도 연평도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복구 상황이 더디고 생활 여건도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연평 비대위는 집이 무너진 주민들에게 인천에 있는 다세대 주택을 지원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피해 복구는 깨진 유리창을 교환하는 수준에서 머물러 있다. 연평초 운동장에 집이 부서진 주민들을 위한 목조 조립주택 39동이 마련됐을 뿐이다. 옹진군 관계자는 "사람들이 돌아와야 피해 조사 및 복구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며 "사실 복구를 시작해도 집을 다시 세우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재식 비상대책위원장은 "나를 포함한 많은 주민들이 연평도로 다시 돌아가길 바라고 있지만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는데 들어갈 수 있겠나"며 "정부와 인천시는 확실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연평도=박진영기자 erhist@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