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견자라뇨?』

 복순은 부비서의 말이 빨리 이해되지 않아 내려다보며 되물었다.

 『수령 동지께서 군대병원을 둘러보러 나오셨을 때 안해는 병석에 누워 있었는데, 그때 수령님의 격려와 위로를 받으며 악수하고 사진촬영까지 한 사람이란 말이야.』

 『네에, 수령님은 정말 자상하기도 하십네다. 기런 데까지 나가시어 병석에 누운 려군들까지 격려해 주시구….』

 『암튼 안해는 기런 접견자 신분이었기 때문에 제대 후에는 당 간부들이 나서서 결혼까지 주선하게 되었는데, 그때 열성당원 소리를 들으며 의욕적으로 당사업을 밀고 나가던 내한테까지 그 소식이 닿아 종국에는 그 려자가 내 안해가 되고 말았어. 거기까지는 두 사람 다 행복했더랬어. 불행은 결혼식 이후에 발생했어. 쇠못을 박아 붙여놓은 골반 뼈에 이상이 생겨 부부관계만 하려고 하면 안해는 아파서 죽는다고 소리쳤어. 그러니 어케 출산을 할 수 있갔어? 남들보다 먼저 출세해 당당하게 살아보려고 결혼도 당에서 추천해 주는 려자와 했는데 결과는 길케 되고 말았어. 근데 이런 사연을 누구한테 털어놓을 수 있네? 그냥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루하루 한숨만 쉬면서 오늘날까지 굴러오고 말았는데, 어느 날은 이상한 생각도 들었어. 출세욕에 눈이 어두워 첫사랑 한 복순이마저 잊어버리고 미쳐 날뛴 내 인생의 업보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하구 말이야. 기런데 아이를 낳지 못한다구 집사람과 내가 이혼을 하고 갈라서게 되면 당에서는 뭐라 하갔어? 김유동이는 위대한 수령님의 권위와 체면마저 짓밟아버린 놈이라고 간부회의 때마다 씹어 댈 것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 내가 어케 그 려자와 갈라 설 수 있갔어? 만약 수령님과 접견한 려자를 기따우 리유를 대고 걷어차고 나면 대번에 내 정치생명에 위기가 닥쳐 명대로 자리 보존도 못하구 쫓겨나게 돼. 요사이는 내 자신이 지지리도 려자 복도 없고 자식 복도 없는 놈 같아서 둘 다 포기하고 말았어.』

 『기래서 아이까지 애육원에서 데려다 키우며 내 핏줄 하나 없이 길케 사시구만요.』

 복순은 이 세상에 태어나 자기 씨앗 하나 남겨놓지 못하고 저승으로 떠나간 세대주 생각이 나서 더욱 정성스럽게 부비서의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부비서는 그런 식으로라도 넋두리를 뱉어내고 나니까 가슴 한 쪽 구석이 후련해지는 느낌이 들어 안대를 걷어내고 일어나 담배를 한 대 붙여 물었다.

 『나이를 먹는 탓인지, 요사이는 자다가도 일어나 일케 앉아 있으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막막해질 때도 많아. 아 새끼는 사흘이 멀다 하고 집구석을 뛰쳐나가 꽃제비 노릇을 하고, 려자는 려자대로 삶에 지친 모습을 보이며 아 새끼와 세대주마저 방치해버리고….』

 『오빠! 사람 사는 모습이 제가끔 따지고 들면 다 똑 같아요. 오늘밤은 그 동안 가슴 아팠던 사연 다 잊고 편안하게 주무시라요. 제가 언니 몫까지 다 해드릴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