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부정'눈물의 승소'


 

   
 

몇 년 전 지방에서 근무할 때였다.

기록을 검토하던 중에 70대 할아버지가 그의 아들을 상대로 돈을 달라는 내용의 소송을 접하게 됐다.

법원에 있다 보면 부자지간, 부부지간, 부녀지간에 일어나는 민사 또는 형사분쟁 등을 종종 접하게 되는 터라 그 사건도 별다른 감흥 없이 법률요건이 맞는지 검토하고 아들의 답변서가 한 달 내에 접수되지 않은 것을 확인한 뒤 민사소송법에 따라 피고가 원고의 주장을 인정한 것으로 봐 무변론 판결을 선고했다.

무변론 판결의 경우 민사소송법에 따라 판결문을 간단하게 작성할 수 있다.

보통 판결문의 형식적 사항과 주문(판단 결과)은 판사가 직접 작성하되 그런 판단을 내리게 된 이유는 원고의 소장을 그대로 스캔, 첨부하는 방식이 많이 이용되곤 했는데 위 사건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판결문을 작성했다.

그런데 며칠 후 어느 지방신문에 그 판결에 대한 기사가 나게 됐다.

문제는 기자분이 법률적으로 정제되지 않고 원고의 감정적인 표현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소장의 내용을 마치 내가 그렇게 판결한 것인 양 소개를 했다는 것이다.

판결문 중 첨부된 소장 부분은 내가 작문한 것은 아니지만 엄연히 판결문의 일부이므로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기사내용을 소개하면 '성난 부정 눈물의 승소'라는 제목으로 70대 할아버지가 어렵게 농사일을 해서 아들을 교육시켰고 그 후 몇 년에 걸쳐 자기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 3천800만원을 아들에게 빌려 주었는데 아들이 원금은 커녕 대출이자마저 갚지 않아 생계가 힘들어져 어쩔 수 없이 이를 돌려달라고 했으나 며느리에게까지 심한 욕을 듣게 돼 부자지간의 연을 끊기로 마음먹고 소송에 이르게 됐고 판사가 결국 불효자에게 철퇴를 내렸다는 내용이었다.

나중에는 위 기사가 인터넷뉴스에도 게시됐고 급기야 TV방송국에서도 취재를 하게 해달라고 전화가 왔다.

일단 원고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전후사정을 설명한 뒤 방송에 응할 의사가 있으면 담당PD에게 전화를 하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분은 너무 일이 커진 것 같다며 당황해 하셨고 결국 며칠 뒤 그분이 아들에 대한 소송을 취하하는 걸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할아버지가 아들을 상대로 소송까지 하게 된 것은 돈이 목적이 아니라 아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 뒤의 소식은 모르겠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부자지간에 화해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천지방법원 판사 임창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