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대우 비정규직 어찌되나"우리도 일하고 싶다"


1천133일. 지난 2007년 10월30일부터 GM대우 부평공장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복직할 날을 꿈꾸며 천막에서 지낸 날들이다. 그 중 130여일은 지상 20m 높이의 고공농성장에서, 며칠은 밥을 굶으며 지냈다. 그렇게 세 번의 겨울과 여름이 지났다. 지난 1일 GM대우 비정규직 노조는 부평공장 정문에서 무기한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비바람을 받아내며 GM대우라는 초국적기업을 상대로 저항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1월엔 비슷한 처지였던 장기투쟁 사업장이 속속 노사합의를 이뤘다. 앞서 7월엔 '2년 넘게 일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원청에 속한 정규직으로 간주된다'는 대법원 판결도 나왔다. 이 여세를 몰아 3년 넘게 이어져 온 GM대우 비정규직 문제를 이번에는 반드시 풀어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 GM대우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황호인씨와 이준삼씨(사진 위)가 8m 높이의 부평공장 정문 위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한지 나흘째인 4일 오전 GM대우 부평공장 앞에서 농성자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정선식기자 ss2chung@itimes.co.kr



칼바람이 이마를 할퀴던 지난 1일 새벽 6시20분, GM대우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둘은 가느다란 사다리를 타고 8m 높이의 부평공장 정문에 올랐다.
나머지 조합원들과 인천 시민사회단체도 그 날부터 지금까지 밤낮으로 정문 앞을 지키며 농성 중이다.
이들의 요구는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복직, 불법파견 중단, 정규직화 실시', 부평공장 서문 옆에 천막을 치던 3년 전부터 줄기차게 회사에 요구했던 것이다.
천막을 덮은 비닐은 낡았고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이란 문구가 적힌 현수막도 빛이 바랬지만 GM대우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은 2007년부터 해고와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일자리를 잃은 뒤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처럼 대공장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쉽게 파리 목숨이 되는 이유는 뭘까.
원청에서 하청으로, 또 하청으로 이어지는 제조업 간접고용의 관행 때문이다.
원청인 GM대우가 사람과 직접 계약서를 써 고용하면, 그는 정규직 노동자다. 원청이 사람이 아니라 인력을 갖춘 회사와 계약을 맺으면 그 회사는 하청업체다. 하청업체 소속이지만 실제로 일 하는 곳이 GM대우 공장인 사람들을 비정규직이라 부른다.
하청업체는 한 곳이 아니다. 하청업체가 또 다른 회사와 계약을 맺으면 또 하나의 하청관계가 성립한다.
이 관계를 구분하기 위해 1차 하청, 2차 하청으로 나눠 부른다. GM대우 부평공장에는 하청업체가 3차까지 있었다. 한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 중에서도 1~3차 하청 소속 비정규직, 단기알바, 계약직으로 복잡하게 나뉘어있는 것이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노동자들의 근무조건은 현저히 낮아진다. 해고 위협에 시달리는 것은 기본, 정규직들과 같은 시간 일하면서도 훨씬 못미치는 임금을 받는다.

   
▲ 지난달 28일 GM대우 비정규직 노조가 농성을 위해 세운 천막 옆으로 직원들이 무심히 출근하고 있다. /박영권기자 pyk@itimes.co.kr

현행법상 제조업에 노동자들이 파견되는 건 불법이다. 하지만 회사는 적법한 도급관계라 주장하고 있다. 파견과 도급을 가르는 기준은 '경영의 독자성과 인사의 독자성,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혼재 여부'다.
신현창 GM대우 비정규직지회장은 "현재 GM대우 파견업체는 독립적인 경영 계획과 기술·노하우가 없고, 독자적인 설비 투자가 없기 때문에 하나의 독자성을 가진 기업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지난 7월 선고한 대법원 판례도 이런 근거에 바탕을 뒀다.
당시 대법원은 "불법파견 노동자라도 2년 넘게 일하면 원청회사가 직접고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원청 회사의 비정규직에 대한 고용 책임을 무겁게 인정'한 첫 사례다.
이에 따라 GM대우와 비슷한 처지였던 기륭전자와 동희오토, 두 장기투쟁사업장에서 극적으로 노사합의가 이뤄지면서 최근 5년동안 싸워왔던 동희오토 해고자 9명이 복직했고, 기륭전자는 농성 1천985일만에 해고노동자 10명이 재고용됐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인천의 대표 장기투쟁 사업장인 GM대우 비정규직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신현창 지회장은 "현대차나 GM대우 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도 수많은 비정규직이 고통받고 있다. 이번 고공농성은 이런 문제들을 알리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회사는 여전히 "비정규직 해고자들은 GM대우가 아니라 하청업체와 복직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문제 해결이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유예은기자 yum@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