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었다.

 상문고등학교 3학년 5반 교실은 도시락 반찬 냄새가 진동했다. 남쪽 창문 옆에 모여 앉아 인구와 같이 도시락을 먹고 있던 오기문 학생이 빈 도시락을 챙겨 가방 속에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곁에 앉은 급우들에게 잠시만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양해를 구한 뒤 좌측 둘째 줄 세번째 자리에 앉아 있는 반장을 보고 말했다.

 『우리 반 말이야, 5교시는 체육인데 선생님한테 말해 곽인구 형이 우리 반으로 편입된 것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친선축구시합이나 한판 벌리는 게 어떻겠어? 지난 주 학급회의 때 그렇게 하기로 결정해 놓고 시험 때문에 계속 못하고 있잖아….』

 『모의고사도 끝났는데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다. 말 나온 김에 오늘 후딱 해치우자.』

 오기문 학생 옆자리에 앉아 있던 육석호가 일어나 거들었다. 그러자 다른 학생들도 덩달아 공부도 하기 싫고 졸리기만 한데 5교시는 그걸로 때우자고 입을 모았다. 반장은 5반 학생들 대다수가 곽인구 형 편입을 축하하는 친선축구대회를 열자고 의견을 모으는 것을 보고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말이 나온 김에 매듭을 지어야겠다면서 교단으로 나가 긴급학급회의를 열었다.

 학생들은 너나 없이 대찬성이었다. 인구는 누구 눈치 볼 것도 없이 즉흥적으로 의견을 제출해 선생님의 지시나 감독도 받지 않고 바로 자기들끼리 토론에 들어가는 남조선 고등학생들의 자유분방한 학교생활 모습이 몸에 익지 않아 가타부타 대답도 없이 빙긋이 웃으면서 지켜보기만 했다.

 『좋다. 그러면 만장 일치로 통과된 걸로 보고 체육선생님한테 가서 허락을 얻어 볼 테니 조금만 기다려 줘.』

 반장이 교실을 나가자 오기문 학생이 인구 옆으로 다가왔다.

 『형! 나도 오늘 형한테 뭐 하나 물어 볼 게 있어.』

 『뭔데?』

 인구가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오기문 학생을 쳐다보았다. 오기문 학생은 자기 아버지는 1952년 평안북도 구성에서 단신 월남한 실향민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인구에게 얼마 전 그런 실향민과 인사를 나누며 식사초대를 받은 일이 없느냐고 물었다. 인구는 불현듯 택시를 타고 국립묘지로 달려가던 날 택시운전기사와 수인사를 나누던 자리에서 저녁을 한 끼 대접하겠다는 운전기사의 제의를 정동준 계장과 함께 받아들인 생각이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 근데 그분 내하고 고향이 같은 분이라는데 명함을 잃어버려 아직 연락을 못하고 있어. 오경택이라는 택시운전기사인데 너 혹시 그 분 연락처 알아?』

 『그 분이 바로 우리 아버지야.』

 『기래?』

 인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잠시 오기문 학생을 쳐다보았다. 그러다간 그 분이 지금 어느 동에 살고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