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법 개정안 국회 통과 … 인천유통업계'상생'할 수 있을까
   
▲ 지난해 12월 인천시 부평구 갈산동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영업 방식을 가맹점으로 전환하고 입점을 시도하자 인근 상인들이 항의집회를 열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지난 10일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확산을 규제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 법률안이 논의된지 3년 만이다. 오는 25일 쌍둥이 법안인 대·중소기업상생협력법안(이하 상생법)도 통과할 예정이다. 소상공인들은 실제 법의 적용을 받아 발목이 묶이는 SSM의 수는 적을 것이라고 내다 보면서도 앞으로 허가제가 도입되기까지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일단 환영의 뜻을 밝혔다. 반면 대기업 유통업체 측은 유통산업의 퇴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지금까지 인천은 SSM 출점을 여러 차례 시도한 삼성테스코 홈플러스와 지역 상인들이 대립하면서 대기업 대(對) 영세기업의 최대 격전지가 됐다. 유통사업부문에서 처음으로 사업조정신청제도를 제기한 곳도 인천이다. 현재 인천지역 SSM은 모두 29개에 이른다. 이번 규제법은 인천 유통체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대기업과 구멍가게, 과연 '상생'할 수 있을까.

 

   
▲ 지난해 9월 인천시 부평구 부개동에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입점을 시도했으나 인근 상인들의 사업조정신청으로 영업이 일시정지됐다. /사진제공=대형마트규제와소상공인살리기 인천대책위원회


▲500m와 가맹점

유통법은 이미 형성된 전통상점가 경계에서 500m 이내 범위에 SSM을 설치하지 못하도록 하고 신고제를 등록제로 전환하는 게 골자다.
인천은 동인천지하아케이드 외 6곳이 전통상점가로 지정됐다.
500m 영향권 안에 들어 있는 곳은 이미 개업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송현동점과 사업조정신청으로 입점을 일시정지한 옥련점이다.
500m 기준은 입점을 하고 영업중인 SSM에 소급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입점하려는 SSM이 지켜야 할 사항이므로 옥련점은 앞으로 문을 열지 못한다.
상생법은 가맹점 SSM을 사업조정제도 대상에 포함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가맹점은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인천 옥련점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유통 대기업을 상대로 한 사업조정신청이 들불처럼 번지자 대기업이 고안한 입점 방식이다.
사업조정에 들어가면 개점이 일시 중단되기 때문에 아예 사업주를 제3의 사람으로 내세워 대기업을 상대로 사업조정신청을 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상생법은 대기업이 51% 이상 자본을 가지고 있는 가맹점형태는 사업조정제도를 교묘히 피하기 위한 '위장 가맹점'으로 보고 해당 체인점도 사업조정신청을 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인천에서 가맹점으로 입점을 시도한 SSM은 4군데로 모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다.


▲SSM접근, 막을 수 있나

 

   
▲ 인천 8개구별 SSM 현황(단위: 개소)

신고제였던 SSM을 등록제로 전환되면서 출점이 까다로워진 것으로 보이지만 등록제는 강력한 제재수단이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영업이 허락되며 시행령에 구체적인 등록제한 조건이 명시돼 있지 않아 지자체가 등록을 임의로 막아도 행정소송을 통한 개점이 가능하다.
500m 기준도 실질적으로 소상인 상권을 보호하는데 역부족이다.
전국 794개 SSM 중 이 거리범위 안에 있는 곳은 30%에 불과하다.
70%의 SSM이 골목상권이나 전통시장과 500m 이상 떨어진 곳에 문을 열었지만 상인들은 상권 침해를 호소하고 있다.
최근 인천 남구 신기시장과 남부종합시장을 중심으로 입점했거나 시도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두 곳은 시장으로부터 각각 약 780m, 1㎞ 떨어져 있다.


▲후폭풍

-대기업에겐 '일단멈춤': 대기업은 유통법과 상생법 통과로 SSM출점에 이중 제동이 걸렸다며 반발했다.
이미 사업조정제도로 입점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규제법은 사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특히 이번 법 통과로 국가경제의 중요 산업인 유통분야의 퇴보를 주장했다.
싸고 품질 좋은 물건을 구매할 수 없게 되면서 서민들의 부담이 더욱 커지는데다 삶의 질과 편익을 저하시킨다고 우려했다.
가맹점을 사업조정 대상에 포함하는 상생법을 놓고는 가맹점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반시민 정책'이라고 못박았다.
이 법의 규제를 받지 않기 위해 가맹점주는 절반 이상의 투자금을 부담해야 하고 결국 대규모 슈퍼마켓을 여러 개 운영하는 중대형 상인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구도연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PR팀 대리는 "실제 동네슈퍼에 영향을 주는 다른 업태는 규제를 하지 않아 형평성과 효과에 의문이 크다"며 "이번 규제의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가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상공인 "아직 멀었다": 상인들은 이번 규제법이 그동안 논의됐던 소상공인 보호에 실질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진정한 상생을 이루려면 500m가 아닌 2㎞ 이상이 돼야 하며 유럽의 경우와 같이 전면적 허가제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상인들의 요구였던 영업시간 및 영업품목 제한 등도 이번 유통법에서 모두 빠졌다.
하지만 최종 목표인 허가제를 달성하기 위해 거쳐야 할 중간단계이며 상인들이 직접 투쟁을 통해 상생법 통과를 눈앞에 뒀다는데 의미를 뒀다.
상인들은 대규모 유통기업끼리 경쟁을 하면서 입점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SSM이라는 변형된 형태로 골목시장을 넘보는 것은 사회적 상도덕기준을 저버린 행태라고 비난했다.
상인들은 대기업이 항상 시장논리를 펴며 소비자의 선택권을 얘기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대기업을 제외한 모든 시장이 붕괴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인태연 전국상인유권자연합 대표는 "시장이 없어졌을 때 소비자의 선택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유통생태계를 유지해야 이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 "소규모 유통업체도 거듭나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대립과 이번 규제법 통과과정을 지켜본 소비자들은 대규모 유통이 골목상권까지 파고 드는 행태를 경계했다.
대기업의 유통마트 체제가 당장은 소비자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독과점을 유발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대형 마트와 SSM이 골목을 모두 점령했을땐 이들이 가격을 점점 올린다고 해도 이미 대체할 상권이 없어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하지만 이번 규제법이 실질적으로 대기업 유통구조에 제동을 걸 수 있을지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대응책을 마련해 영업을 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적할 방법으로 소비자들은 소규모 유통업체가 상품과 서비스면에서 질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노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소비자를 배제한채 자신의 영업권만을 위해 다툰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화를 소비하는 입장에서 대기업과 소기업의 입장은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품질 좋은 물건을 값싸게 구입할 수 있는 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박혜영 한국소비자연맹 인천지회 사무국장은 "편리한 매장에서 좋은 물건을 고르려는 것은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이기도 하다"며 "재래시장과 소상공인들이 영업 방식을 개선하거나 영업윤리지침 등을 만들어 실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지혜·조현미기자 jjh@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