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馬克思 연구자들 왜 인천에 왔나
   
▲ 중국의 대표적 마르크스 연구자들이 지난달 28~29일 인천을 찾아 사상 처음으로'한·중 마르크스주의 연구자 회의'를 가졌다. 회의장에서 참석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주제발표를 듣고 있다.


장이빈(張異賓), 어우양캉(歐陽康), 우샤오밍(吳曉明), 왕난스(王南湜), 한리신(韓立新), 장량(張亮)….
칼 마르크스(1818~1883)를 중국에선 마극사(馬克思)로 음차한다. 중국의 기라성 같은 '마극사' 연구자 15명이 지난 28·29일 인천을 다녀갔다.
중국에서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마르크스주의 학자 그룹의 절반이다. 일부는 중국 공산당 고위간부를 겸한다는 엘리트들이다. 예삿일이 아니다.
인하대가 주최한 '한·중 마르크스주의 연구자 회의'에 온 중국 대표단이었다. 중국 마르크스 연구자들이 무리지어 한국에 오긴 이번이 처음이다.
'마르크스의 재해석', 중국 대표단이 갖고 온 화두였다. 초강대국 중국이 무슨 이유로 '철 지난' 마르크스를 얘기하자고 온 것일까.
장이빈 남경대 부서기는 "중국 전역에서 '마르크스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0여년 숨가쁜 개혁·개방과 자본주의화를 성찰하려는 시도다. 그 중심이 마르크스 사상"이라고 방한배경을 설명했다.
극단적 빈부격차, 노동착취, 인권탄압, 환경파괴 등등. 중국에선 자본주의의 전형적 모순이 점차 수면에 드러나고 있다.
장 부서기의 언급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중국식 체계가 한계에 이를 수 있다는 위기의식으로 풀이된다.
같은 맥락에서 어우양캉 화중과학기술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마르크스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의 비약적인 생산력 증대가 가져다준 엄청난 발전에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근대화의 근본적 모순을 파헤친 비판자이자 재건설자이기도 하다. 중국이 마르크스에 다시 주목하는 이유"라고 했다.
그럼 왜 한국이었을까. 중국과 한국은 마르크스 연구에서 한 번도 교류다운 교류를 해 본 적이 없다. 그 분야에선 일본이 한국보다 저만치 앞선다.
이번에 온 중국 대표단들은 "자본주의 한국에서 마르크스 연구가 이렇게까지 폭 넓고 깊은지 처음 알았다. 자본주의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중국에서 한국의 마르크스 연구는 전혀 새로운 발견"이라고 입을 모았다.
우샤오밍 복단대 교수는 "한국은 급격한 자본주의 발전과 유교문화권이란 점에서 중국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한국의 마르크스주의는 중국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의 마르크스 학자들은 이틀 간의 회의 내내 치열했다. 유물론과 변증법, 착취와 수탈 등 마르크스를 이해하는데 기본적인 개념들을 쏟아냈다.
마르크스주의와 현실정치·경제와의 상관관계, 마르크스 저작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 문학·역사·미학 차원의 마르크스주의 등 다양한 분석들도 쉼 없이 주고 받았다.
한국에서도 마르크스 연구의 대가들이 총출동했다. 1990년대 초 국내 최초로 출간된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을 감수한 서울대 김세균 교수, 23년 간의 작업 끝에 국내 최초로 독일어판 '자본론(Das Kapital)'을 한글완역한 동아대 강신준 교수 등이 주제발표를 맡았다.
특히 '독일이데올로기'에 대한 독창적 연구로 잘 알려진 고려대 정문길 교수의 발표도 큰 주목을 끌었다.
이번 한·중 마르크스주의 연구자 회의는 중국학자들이 인하대 홍정선 인문대학장에게 제안해 1년 만에 성사됐다.
모든 체류비용을 그들이 직접 댄 것도 주목할 일이다. 한국의 마르크스 연구에 대한 중국 학계의 관심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으로 읽힌다.
칼 마르크스가 사망한지 올해로 127년째. '마르크스의 유령들'(자끄 데리다·1993년 작)이 돌아오기라도 한 걸까. 21세기, 마르크스에게 다시 길을 묻는 한·중 학자들이 어떤 그림을 그릴지 궁금하다. /글·사진=노승환기자 todif77@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