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지배인 윤성실 아주머니가 밥상을 들고 일어섰다. 그녀는 복순에게 보자기에 싼 술병과 물주전자를 들고 앞장서라고 했다. 복순은 지배인 아주머니가 시키는 대로 앞장서 걸었다. 서산 하늘을 붉게 물들이던 낙조는 그새 사라지고, 어느새 관리소 사무실 앞뜰에는 어둠이 내려 깔리고 있었다. 복순은 식당 지배인 아주머니와 함께 부비서 사무실로 들어가 먼저 방문을 활짝 열어놓으며 방으로 들어가 밥상을 받았다.

 『부비서 동지는 안 보입네다 그려?』

 밥상을 부비서 방으로 들여놓고 지배인 아주머니가 복순을 쳐다보며 물었다. 부비서 동지는 세면장에서 아직까지 몸을 씻고 있는 것 같다고 복순은 대꾸했다. 부비서에게 눈도장이라도 한번 찍고 싶었는데 실망한 듯 지배인 아주머니는 주위를 힐끔힐끔 살피며 걸어나가다 다시 복순 곁으로 다가왔다.

 『저녁밥 드시다 부족한 것이 있으면 날래 오라요. 더 담아 드릴 테니까니….』

 『길케 하갔습네다.』

 『하이구, 그 사이 부비서 동지 사무실과 방이 확 달라졌네. 어케 이렇게 깔끔하기도 할까…?』

 지배인 아주머니는 아부하듯 복순의 칭찬을 늘어놓고는 돌아갔다. 복순은 방으로 들어와 술병을 풀어놓으며 지배인 아주머니가 야밤에 출출하면 까먹으라고 술병과 함께 싸 준 고구마 삶은 것을 양은 그릇에다 옮겨 담았다. 그때 부비서가 목에 수건을 걸친 모습으로 방으로 들어왔다. 복순은 벽에 걸어놓은 실내복 윗도리를 벗겨 주었다. 부비서는 거울 앞에 서서 외팔로 머리에 묻은 물기를 닦아댔다. 복순은 한 손으로 머리의 물기를 닦는 부비서의 모습이 안타까워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오빠, 내가 좀 거들어드릴 테니까니 잠시 앉아 보시라요.』

 복순은 쭈빗쭈빗하는 부비서를 당겨 앉혀 스스럼없이 머리카락에 묻은 물기를 말려 주었다. 그리고는 부풀부풀 일어서 있는 듯한 머리카락을 가리마를 타서 빗겨 준 뒤 가볍게 어깨까지 주물러 주었다. 부비서는 거울 속의 자기 모습을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드세게만 느껴지는 안해에게서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번도 느껴볼 수 없는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이렇게 성정이 곰살궂고 손끝이 세세한 에미나를 엉뚱한 군인 동무한테 보내버리고, 당 사업에만 미쳐 날뛰는 여자와 혼인을 해 지금껏 서걱거리면서 살아온 자신의 지난 삶이 일순 가련하게도 느껴졌다.

 인생 늘그막에는 외팔이로 변해 돌산이나 지키며 살 놈이 당원이 되는 거이 뭬가 길케 급해 첫사랑 한 에미나한테 편지 한 장 써 부치는 시간까지 아까워하며 살았을까?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길을 뒤돌아보면 인생은 늘 실패와 후회의 연속이라는 말을 하지만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첫번째 실패는 남들보다 먼저 당원이 되어 출세해 보려는 야심 때문에 첫사랑 한 복순을 군에 나가자마자 거두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