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 안들어서엄마·아빠가 이혼 하나봐요


 

   
 

나는 협의이혼과 재판이혼을 통틀어 매주 약 100쌍 정도를 이혼시키고 있다. 이혼 '시킨다'는 말은 어폐가 있으나 실제 법정에서 "판사님! 제발 오늘 좀 이혼 시켜주세요!", "도저히 이대로는 이혼 시켜줄 수가 없어요"라는 말들이 오간다.

민법 상 미성년 자녀가 있는 부부가 이혼하려면 반드시 친권자와 양육자, 양육비, 면접교섭 방법 등 양육에 관한 사항을 협의해 정해야 하는데 그냥 정하기만 해선 안 되고 '잘' 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판사가 보정을 명하거나 직권으로 '잘' 정할 수 있다. '잘' 정한다는 것은 자녀의 복리를 기준으로 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실상 부모의 욕심, 편의에 따라 제멋대로 대충 정해오는 경우가 많다.

아이는 엄마가 키우는데도 친권이 무슨 벼슬이나 되는 듯 자기가 갖겠다고 우기는 남편, 재산을 분할하듯 아빠가 아들을, 엄마가 딸을 나눠 갖겠다고 하면서 서로 다시는 보지 말자며 남매끼리도 이혼시키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애들을 안 보여주니 양육비는 한 푼도 못 준다는 남편과 양육비를 한 푼도 안 주니 애들은 절대로 안 보여준다는 아내도 있다.

심지어 돌도 안 된 아이를 놔두고 가출한 아내와 그렇다고 아이에게 엄마가 숨졌다고 말한 남편, 이미 합의했다고 하면서 면접교섭란에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전혀 안 만남'이라고 당당히 써 오는 부부 등 정말 어찌 손댈 수 없는 수준의 협의를 해 와서는 "빨리 이혼이나 시켜주세요!"라고 한다.

아동전문가에 따르면 아이가 초등학생 정도만 돼도 추상적 사고가 가능해 인과관계를 인식할 수 있으므로 '아빠가 엄마를 때려서 엄마가 이혼하는 거야'라는 사고를 할 수 있지만 그 아래 연령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내가 말을 안 들어서' 혹은 '내가 밤에 오줌을 싸서' 부모가 이혼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말을 잘 들으면' 우리 엄마, 아빠가 함께 살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한다고 한다.
만 3세 이하 유아들은 더욱 인격적으로 생각해 그냥 '나 때문에' 혹은 '내가 미워서' 부모가 이혼한다고 생각한단다. 때문에 어린 아이일수록 표현을 못하지만 부모의 이혼이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 너무나 가엽다.

이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혼 여부를 신중히 결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혼을 하더라도 아이의 마음을 잘 헤아려 아이가 상처받지 않게 아이가 부모의 사랑에 의문을 갖지 않도록 잘 다독이며 이혼해야 한다.
비록 엄마와 아빠가 함께 살지는 못 하지만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돌봐줄 것이라는 안정감을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부부들에게 오늘도 나는 말한다. "아직은 이혼시켜 줄 수 없어요. 더 협의해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