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아주머니들은 먼저 아는 체를 하며 다가와 복순에게 말을 건넸다. 학습지도원이 뭐라고 말을 해놓았는지, 식당 아주머니들의 표정과 말투는 학습을 받으며 두어 번 와봤을 때와는 완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자기 이름이 윤성실이라는 식당 지배인 아주머니는 살며시 다가와 귓속말로 『부비서 동지를 곁에서 모시게 된 것을 축하드립네다. 늘 살뜰히 보살펴 드리면서 중간에서 우리 식당 복무자들 이야기도 많이 전해 주시라요….』 하면서 부비서 동지의 기쁨조원으로 발탁된 그녀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복순은 이런 것이 관리소에 수용된 여자들이 누리는 권력이라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웃었다. 장기복무 초기하사관과 결혼해 전연지대에서 신혼살림을 꾸몄을 때는 세대주의 부하들이 찾아와 자신을 마치 상전 받들 듯이 도와주며 곰살구ㅊ게 굴더니 여기 오니까 부비서의 아랫사람들이 또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대해주는 학습지도원과 식당 복무 아주머니들의 행동을 지켜보며 부비서가 이곳 관리소내에서 행사하고 있는 권력의 실체를 가늠할 수 있었다.

 부비서는 표면상으로는 비서 동지의 아래에 있는 사람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이곳 관리소 지도 감독권을 다 틀어쥐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2만여명에 이르는 죄수들의 생사여탈권과 수많은 보위원들의 인사권까지 가지고 있어서 그의 말과 지시는 곧 법이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죄수들의 목숨은 파리 목숨처럼 왔다갔다했다. 그런 권력의 소지자를 곁에서 모시며 몸종 노릇을 하게 되었으니 식당 아주머니들이 복순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복순은 식당 아주머니들의 바쁜 손끝을 지켜보다 조리대 앞으로 다가가 함께 부비서의 밥상을 차렸다. 식당 아주머니들이 정성들여 조리해 놓은 비서와 부비서의 저녁밥상 위에는 그녀가 평소 생각도 할 수 없었던 맛깔스러운 음식들이 다 놓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닭을 삶아 노란 기름이 동실동실 뜨는 백숙이며, 무와 당근을 큼직큼직하게 썰어 넣고 폭 삭힌 가자미젓이며, 죄수들이 산에서 캐 온 더덕을 벌겋게 고추장을 발라 구워놓은 더덕구이와 온갖 산나물을 된장과 기름을 넣고 볶아놓은 것은 보기만 해도 침으 꼬르륵 넘어갈 정도로 기름지고 풍성해 보였다.

 하루종일 돌가루를 마시며 힘들게 망치질을 하는 죄수들의 밥상에는 몇 달 동안 기름한 방울 배급할 수 없는 형편이라는데 비서와 부비서의 밥상은 어떻게 이렇게 산해진미가 넘쳐날까? 복순은 이렇게 기름지고 많이 차린 음식들을 하나도 버리지 말고 잘 챙겨 두었다가 오두막에 한번씩 다니러 갈 때 김유순 방장과 옥남 언니에게 갖다주면 그들은 너무 고마워서 자신에게 절이라도 해줄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 됐시요. 이자(이제) 가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