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의 초승달 지역'을 따라서3. 로마제국 최대의 신전을 바알베크에 세운 까닭은
   
▲ 로마제국 최대의 신전이 있는 레바논의 바알베크. 가운데 원주기둥이 보이는 곳이 최대 규모였던 유피테르신전. 왼쪽에 보이는 것은 바쿠스신전이고 오른쪽은 비너스신전 터다.


레바논은 한때 '중동의 파리'라고 불렸다. 지금은 내전의 상처를 보듬기 위한 복구공사가 한창이지만 그래도 수도인 베이루트 길가의 수많은 광고를 보면 이곳이 과연 이슬람국가인가를 의심할 정도로 화려하고 파격적이다. 레바논은 현재도 중동의 파리임을 스스로 자랑하고 있는 듯하다.
레바논은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은 곳이다. 로마제국은 지중해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는데 로마제국 최대의 신전은 이곳 레바논의 바알베크에 있다. 대제국을 건설한 로마가 제국 최대의 신전을 로마도, 그리스도 아닌 중동의 레바논에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바알베크는 베이루트서 북동쪽으로 86㎞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에 가려면 레바논산맥을 넘어가야 한다. 그 옛날 로마제국군이 동방원정을 나섰던 길에 오르자, 산꼭대기까지 건물이 빼곡하다. 그런데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건물의 지붕이 주황색이다. 푸른 지중해와 녹색 나무숲, 주황색 지붕을 한 하얀 건물들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레바논산맥을 넘어서자 푸른 평원이 시야에 가득 펼쳐진다. 베카평원이다. 평원 맞은편으로 달리는 안티레바논산맥을 따라 동서 15㎞, 남북 170㎞ 길게 뻗은 베카평원은 매우 비옥한 땅이다. 로마제국이 이곳을 가리켜 '제국의 빵바구니'라고 불렀을 정도로 최대의 곡창지대다. 로마제국이 필요한 곡물과 과일의 상당량을 이곳에서 조달했기 때문이다.

 

   
▲ '비옥한 초승달지대'라 일컫는 베카평원의 전경.


베카평원의 북쪽 중앙에 있는 바알베크에 이르자 로마신전들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아크로폴리스에 들어서자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은 거대한 기둥들이 탐사팀을 압도한다. 로마제국 최대 신전인 유피테르(주피터)신전을 지탱했던 기둥이다. 신전의 기둥은 직경이 2m가 넘고 높이도 20미터가 넘는다. 신전의 하부를 바친 건축물까지 합치면 높이는 40m를 넘는다. 이러한 신전을 짓기 위해 거대한 돌들이 사용됐는데 최고 2천 t에 달하는 것도 있다. 이 돌을 움직이는 데만 약 4만 명이 필요했으니 신전을 짓는 데는 엄청난 인원이 동원됐을 것이다. 모두 54개의 기둥이 있었으나 두 차례의 지진으로 모두 무너지고 현재의 모습처럼 6개만 남았다. 실로 지진이 아니고서는 무너뜨릴 수 없는 거대한 석주(石柱)이다.
유피테르신전 옆에 아담한 모습의 바쿠스신전이 있다. 바쿠스신전은 로마제국의 신전 중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신전인데, 유피테르신전 옆에 있어서 아담하게 보일 뿐이지 가로 36m, 세로 68m의 크기로 아테네의 파르테논신전보다 더 크다. 바쿠스신전 곁의 비너스신전은 로마제국의 신전으로는 매우 드물게 원형(圓形)으로 건축되어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들 세 신전의 건설은 오랜 기간에 걸쳐 완성되었다. 다마스쿠스까지 이르는 중동의 요지를 점령한 시저는 이곳에 대형 신전의 건설을 계획하고 서기 60년 유피테르신전을 완공했다. 뒤이어 바쿠스신전(150년)과 비너스신전(220년)이 완성되었다.
시저가 로마도 아닌 이곳에 제국최대의 신전들을 세운 것은 단지 베카평원의 비옥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베카평원 북쪽 한복판에 있는 바알베크는 고대로부터 성스런 땅으로 여겨왔던 곳이기 때문이다. 바알베크라는 명칭도 태양(바알)과 언덕(베크)이 합쳐진 것으로 로마제국 시기 훨씬 이전인 고대 페니키아시대부터 태양신을 모시던 성지(聖地)였다. 그리스시대에도 이곳을 헬리오폴리스(태양의 도시)라고 부르며 신성시했는데 시저는 바로 이러한 성지에 거대한 신전을 건설함으로써 로마의 정신으로 동방경영에 필요한 통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 6개의 원주기둥만 남은 유피테르신전.


그러나 역사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했던가. 로마제국 최대의 신전이 완성될 무렵, 로마제국은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그리고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함으로써 이제껏 오랜 기간에 걸쳐 대역사를 기울인 신전들이 기독교인들에 의해 파괴된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이후 신전들은 기독교 교회와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어 아용되어 왔다.
역사의 흥망성쇠를 가늠하는 키워드는 경제력이다. 경제력은 곧 부의 축적을 의미한다. 부의 축적이 왕성하려면 교역이 활발해야 하고, 또 그 교역을 이끄는 중심이어야 한다. 바알베크는 지중해와 서아시아 남북을 이어주는 교차점이었다. 그리스인이 태양의 도시라 부른 것도 바로 이러한 활발한 교역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강력한 경제력을 가진 로마제국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쳐 있는 이민족을 다스릴 구심점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고대로부터 태양신의 신전이 있던 이곳을 택해 이를 흡수하고 자신들만의 신전을 세운 것이다.
이처럼 베카평원의 중심에 바알베크 신전이 있듯, 환황해시대를 열어가는 대한민국의 중심에 인천이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심장이자 경제도시도 동서남북을 오가는 교차로가 될 때 가능한 것이며, 동북아 허브도시 인천도 이때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바알신의 근원>

 

   
▲ 시리아 우가리트에서 발견된 바알신상(B.C. 12~14세기)

바알은 가나안 우가리트 신화에 나오는 엘(으뜸가는 신)의 아들이다. 바알(Baal)은 '주인'이라는 의미인데, 서아시아 일대의 가나안지대에서는 오래전부터 풍년신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바알은 땅을 풍요롭게 해주는 비와 폭풍우를 주관하는 신이다. 그의 모습은 오른손에 망치를 치켜들고, 왼손에는 창살 모양을 하고 있는 번개를 들고 있다.
바알의 적수는 얌(바다의 신)과 모트(죽음의 신)였는데 엘의 도움으로 죽음에서 소생하여 모트까지 쫒아내고 승자가 된다. 혹심한 더위와 사막의 날씨는 곧 죽음과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모트의 영역이다. 바알의 소생은 풍요로운 자연의 순환을 의미한다. 바알신은 엘신과 마찬가지로 황소로 상징되며, 황소로 숭배되기도 한다. 로마제국시대에 들어와서 기독교도들에 의해 우상숭배의 대표적인 타도 대상이 되었다.


레바논=인천일보-인하대 실크로드탐사취재팀
/조태현·남창섭기자 csnam@itimes.co.kr
/허우범 인하대 홍보팀장 app010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