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의 초승달 지역'을 따라서2. 지중해를 장악한 페니키아, 알파벳을 만들다


레바논은 우리나라 1/10 크기의 작은 나라다. 그런데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이 4곳이나 된다. 작은 나라가 어떻게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을까. 그것은 이곳이 이미 오래전부터 인간이 살아가기에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지중해 연안의 평원을 흐르는 마르지 않는 강물과 사막의 열기를 막아주는 산맥들이 과일과 채소재배를 가능하게 해주고, 내륙의 평야지대를 흐르는 강은 많은 곡물을 생산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풍요로움과 함께 동서양의 가운데에 위치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여러 민족과 국가가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각기 독특한 문명을 발전시켰다.

 

   
▲ 비블로스 해안의 유적지 전경. 7천년 역사를 가진 세계 최고(最古)의 도시 비블로스는 고대부터 중세까지의 유적이 모두 한 곳에서 발굴됐다.


이러한 까닭에 레바논은 기원전 2천년대부터 도시국가가 생겨났다. 지중해 연안에서 탄생하기 시작한 도시국가는 풍요로움으로 인해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등지까지 국제무역이 가능했다. 이때 왕성한 활동을 한 도시국가가 비블로스, 티레, 시돈 등인데 이들 국가들을 일컬어 페니키아라고 한다. 페니키아라는 명칭은 '자줏빛의 상인'이라는 뜻이다. 이들만이 조개껍질을 재료로 값비싼 자줏빛 염료를 만드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시돈항에 있는 십자군 성채.

페니키아는 이집트의 통치를 받았으나 이집트의 정치적 혼란기를 거쳐 기원전 1200년경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한다. 그리고 뛰어난 항해술과 해상무역으로 지중해와 에게해를 장악하고 약 400년간의 전성기를 누렸다. 무역과 상술에 뛰어났던 페니키아인은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를 그들만의 표음문자인 알파벳으로 변형시켜 유럽에 전달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알파벳의 원형이 되었다.
비블로스는 페니키아 최대의 항구도시로 유명한 백향목과 자색 염료의 수출항이었다. 레바논 국기에도 그려진 백향목은 높이가 40~50m에 이르며 아주 단단한 목재다. 건축자재나 배의 재료로 쓰였는데 솔로몬 왕이 성전을 건축할 때도 사용했고,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자신의 묘실을 만드는 재료로도 사용할 정도로 귀중한 목재였다.
비블로스의 탄생은 최초의 집단주거지가 발견된 기원전 7000년경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다.
베이루트 북쪽 40㎞에 있는 비블로스 유적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13세기에 축조한 십자군 성채가 웅장한 모습을 자랑한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터가 펼쳐진다.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진 L자형 신전과 오벨리스크 신전 터도 거대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로마제국시대의 반원형 극장과 성벽, 석관 등도 널려있어 그야말로 비블로스가 세계 최고(最古)의 도시임을 알려준다.

 

 

 

 

   
▲ 티레에 있는'죽은자들의 도시'.

기원전 4세기. 그리스가 강성해지자 페니키아는 시돈과 티레 등의 세력이 약해지며 그리스의 속주가 된다. 이는 기원전 64년, 페니키아의 전 지역이 로마의 시리아 속주로 편입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티레는 베이루트 남쪽 80㎞ 지점에 있다. 페니키아 시대의 주요도시인데도 당시의 유적은 남아있지 않다. 4세기 초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을 점령했을 때 파괴했기 때문이다. 다만 보이는 것은 온통 로마시대 유적들뿐이다.
'황제의 도시'라는 해안가의 유적은 대리석으로 포장된 넓은 길 양쪽으로 둥근 기둥들이 바다를 향해 도열해 있다. 목욕탕, 극장, 신전, 주거지 터 등이 이곳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해안에서 내륙으로 1㎞ 정도 떨어진 곳에 '죽은 자의 도시'가 있다. 로마제국 최대의 전차경기장, 개선문, 수로 등이 있는 곳에 수없이 많은 석관들이 늘어서 있다. 석관의 외벽은 직위와 계층에 따라 다양한 글씨나 인물조각들로 장식되어 있다. 티레는 이스라엘과 20km 떨어진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항상 군사적인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곳이다. 2006년에도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로마시대 지하 묘지의 일부가 파괴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바로 이곳에 우리나라의 동명부대가 유엔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하고 있다.


레바논의 지중해 연안에 있었던 페니키아는 당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우수한 조선기술과 항해술로 지중해의 전 지역을 장악했다. 백향목과 자줏빛 염료와 옷감, 시돈에서 생산된 자수품과 포도주, 채색 유기 등을 수출했다. 또한 아프리카, 아시아를 잇는 중개무역을 통해 귀금속, 상아, 공예품 등을 교역했다. 이를 통해 축적된 경제력은 말을 표기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들게 하였으며, 이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로마자 알파벳의 원형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하늘과 바다를 가진 인천이 페니키아의 역사에서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선진기술의 창조와 융합을 통한 동북아 허브도시로의 성장일 것이다. 바다와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열린 정신일 것이다. 그때 인천은 환황해시대를 주도하는 대한민국의 대표도시가 될 것이다.

 

 

 

 

   
▲ 비블로스의 오벨리스크 신전. 작은 크기의 오벨리스크가 촘촘히 있는데 이는 페니키아 최대의 도시인 비블로스가 이집트와 교류한 증거이기도 하다.

 


레바논=인천일보-인하대 실크로드탐사취재팀
/조태현·남창섭기자 csnam@itimes.co.kr
/허우범 인하대 홍보팀장 app010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