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군대 나간 뒤에는 편지도 한 번 주지 않았댔시요?』

 『복순이는 나보고 배신했다는 생각도 많이 했을 기야. 내가 려자라도 기런 생각은 했을 거이니까. 길치만 너무 원망은 말라우. 너도 기억하고 있갔지만 내가 군대 복무를 할 때는 고향 하늘을 쳐다볼 수 없을 만큼 큼직큼직한 사건 사고도 많았고, 금방 전쟁이 터질 만큼 북남(北南) 북미(北美)간의 분위기도 험악했댔어….』

 부비서는 1968년 1월21일 민족보위성(인민무력부) 정찰국 직속 124군부대 유격대원 31명이 군사분계선을 돌파해 남조선 청와대를 기습한 사건과 그로부터 이틀 뒤인 1월23일 인민군 해군과 공군이 합동작전으로 미국 해군 정보수집보조함 「푸에블로」 호와 승무원 83명을 동해바다에서 나포해 원산항으로 끌고 들어와 족치던 시절을 회상해보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난 기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시요. 기냥 오빠가 마음 변해 떠나간 줄 알고 혼자 가슴 아파하다 나중에는 오빠보다 더 행복하게 살겠다고 이를 깨물며 군인 세대주하고 결혼하고 말았시요.』

 『다 지나간 일이다. 너무 가슴 아프게 후적거리디 말라우. 나도 그 동안 말못할 사정이 많았댔어.』

 『지도원 동무한테 오빠 살아온 이야기 듣고 나도 생각 많이 했시요. 오빠와 내가 다시 만나지 못하고 길케 헤어지게 된 거이 다 내 박복한 팔자려니 하고 말입네다. 이자는 다 지나가고 만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말았으니 날래 씻기나 하시라요. 옛날, 보고 싶었을 때를 생각하며 다친 어깨나 좀 주물러 드리구 싶어요.』

 『고맙다. 오늘밤에는 복순이 보구 싶었던 군대복무시절을 생각하며 술이나 한 잔 마셔야갔다. 식당 아주마이 보고 내 저녁밥은 이쪽으로 들고 오라고 하라우. 술안주도 좀 만들어 달라 기러구. 저녁밥 먹으면서 반주나 몇 잔 마시게….』

 부비서는 작업복을 벗어 던져놓고는 세면장으로 들어갔다. 복순은 부비서가 갈아입을 속옷을 챙겨주고는 관리소 식당으로 갔다. 대걸레를 들고 식당 바닥을 닦고 있던 식당아주머니가 다가와 살갑게 인사했다.

 『어서 오시라요. 부비서 동지, 숙소로 들어오셨습네까?』

 『네. 지금 씻고 계십네다.』

 『빨리 저녁밥 준비를 해드려야갔는데 뭐라고 말씀이 없었댔습네까?』

 『숙소로 저녁밥을 들고 오라 하시면서 술도 좀 가지고 오라고 하시던데…밥상은 어케 차려야 합네까?』

 『안으로 들어가 조금만 기다리시라요. 내가 날래 준비해 주갔시요….』

 식당 아주머니는 그녀를 데리고 조리실 안으로 들어갔다. 두 명의 식당 아주머니들이 조리대 앞에서 바삐 왔다갔다하며 비서와 부비서의 밥상에 놓을 저녁반찬을 조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