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연 솜먼지와 함께 무엇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쌀 낱 만한 이가 스멀스멀 기어가고 있었다. 속담에 「과부는 은이 서 말이고 홀아비는 이가 서 말」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딱 맞다 싶었다.

 흙탕이 되어 있는 바지와 양말들을 다 빨아 늘고 나니까 어느덧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 사무실과 방안 정리를 했다. 그리고는 방 아랫목에다 호청을 뜯어낸 요때기지만 담요로 덮어씌워 깔아놓았다. 하루종일 바깥에서 서서 일하던 남자들은 저녁때 집에 돌아와 아랫목에 이부자리가 깔려 있으면 그렇게 마음이 평화로울 수가 없다는 세대주의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녀는 세대주가 생전에 자리에 누워 있다 벌떡 일어나 머리맡에 마련해 둔 자리끼를 벌컥벌컥 마셔대던 때를 그려보며 조그마한 쟁반에다 자리끼 물주전자를 마련해 컵과 함께 담아두었다. 이부자리 위에 누웠다가 일어나 손을 뻗쳐 물을 한 잔 부어먹을 수 있는 요긴함이 남자의 마음을 얼마나 강하게 여자가 있는 가정 속으로 끌어당기게 만들고 또 행복하게 만드는가 말이다. 그녀는 부비서 동지가 작업총화보고를 받고 사무실로 돌아오면 곧장 작업복을 벗고 몸을 씻을 수 있도록 요 호청과 이불 호청을 삶아낸 가마에다 물을 한 솥 데워 놓았다. 그리고는 마른빨래를 걷어와서 바삐 손질했다. 그때 부비서가 사무실로 들어와 구석구석을 살펴보더니 놀랜 표정으로 물었다.

 『이거이 참! 사무실과 방구석이 몰라보게 달라졌구만. 빨래도 복순이가 다 했는가?』

 복순은 레닌모를 삐딱하게 쓴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비서는 산뜻해진 사무실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듯 실없이 사무실을 왔다갔다하다 다시 방문을 열고 문턱에 걸터앉아 신발 끈을 풀었다. 성복순은 손질하던 빨래를 개어 밀어놓고는 살며시 일어나 부비서 곁으로 다가갔다. 엎드려서 신발 끈을 푸는 부비서의 어깨와 등을 통통통 두들겨 주다 그녀는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세면장 가마에다 물 데워 놓았시요. 날래 씻고 이 속옷으로 갈아 입으라요.』

 엎드려서 한 손으로 신발 끈을 풀던 부비서는 움찔 놀라는 듯한 표정으로 자기 귀를 의심했다.

 『오빠?』

 부비서는 몇 십 년만에 처음 들어보는 듯한 그 말이 너무나 정답게 들려오는 것 같아 긴장을 풀며 자신도 모르게 빙긋이 웃었다. 성복순은 부비서가 웃는 모습을 지켜보다 용기를 내어 한 마디 더 건넸다.

 『부비서 동지한테 오빠라고 부른 거이 마음 상하게 했시요. 표정이 와 기래요?』

 『아, 아니다. 너한테 갑자가 오빠란 소리를 들으니까니 너랑 나랑 소꿉놀이 할 때가 생각나서 기렇다.』

 『그때, 나, 오빠 엄청 좋아 했시요.』

 『기래, 나도 네 마음 잘 안다. 갑작스럽게 군대에 초모(招募) 되지만 않았어도 너와 난 일케 만나지는 않았을 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