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갈망하는'60년대 말 젊은이들의 외침'담아


테이킹 우드스탁 (감독 : 이안 주연 : 헨리 구드먼, 에드워드 히버트, 이멜다 스턴톤)
 

   
 


닐 암스트롱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에 발을 내딛는 장면이 전세계에 생중계되었지만, 미·소 강대국을 중심으로 한 칼날같은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우주공간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었으며, 여전히 월남전에서는 끊임없이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었다. 이 답답한 세상은 출구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반전운동과 마약과 프리섹스가 홍수처럼 범람하던 60년대말의 분위기를 하나의 단어로 상징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드스탁 페스티벌이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단순한 음악축제를 넘어서 사회적 억압과 정치적 모순에서 벗어나고 평화를 갈망하는 젊은이들의 진보적 꿈이 한군데 집결하여 거대한 평화의 물결을 만들어냈다. 낡은 세계에 염증을 느끼고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은 우드스탁에서 확인되면서 전세계로 파급되어 세계적으로도 커다란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와호장룡' '브로크백 마운틴' '색·계'의 이안 감독이 만든 '테이킹 우드스탁'은, 1969년 여름에 펼쳐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이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기획자였던 엘리엇 타이버는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개최되기까지의 뒷이야기와 페스티벌 기간 동안의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소설 '테이킹 우드스탁'을 2007년 출간하였고 제작자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제임스 샤머스가 이 작품의 영화화를 이안 감독에게 제안함으로써 이루어진 이 영화는, 정작 우드스탁 무대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는다.

이제는 유명해진 이야기지만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실제 지명인 우드스탁에서 열린게 아니라 뉴욕주 외곽의 시골동네 베델 평원에서 개최되었다. 원래 페스티벌을 개최하기로 한 지역의 주민들이 히피 문화에 대한 거센 반감 때문에 행사를 취소하게 되자, 유대인이며 화가이고 베델 상공회 젊은 회장인 엘리엇 타이버(디미트리 마틴)는 여름 휴가기간동안 자신의 농장에서 개최하려고 허가를 받아두었던 음악 페스티벌의 허가증을 이용하여 우드스탁 페스티벌 유치하게 된다.

베델에서 '엘 모나코' 모텔을 운영하는 부모님이 은행 빚으로 파산 위기에 처해 있다는 연락을 받고 부모님을 도와드리기 위해 베델에 머무르고 있던 엘리엇 타이버는 우드스탁 주최측을 이끄는 마이클 랭, 아티 콘펠드, 조엘 로즈만, 존 로버트 등과 만나 베델 지역의 넓은 평원을 차지하고 있는 농장 소유자와 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자신의 모텔을 페스티벌 본부로 사용하게 한다. 이미 10만명의 입장권을 판매한 주최측으로서는 새로운 장소를 물색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이안 감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정면을 보여주는 대신 영리하게 측면과 후면을 집중 공략함으로써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60년대의 문화 아이콘을 이 시대의 아이콘으로 치환시켜 놓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화두는 같다. 이 삭막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갈등과 대립의 세계를 어떻게 치유하고 평화와 화해가 공존하는 세계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인다.

이안 감독은 기존의 관습과 제도를 거부하고 정치적, 성적 자유를 지향했던 우드스탁 세대의 마음을 무겁고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고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담아냄으로써 오히려 더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한국 락 페스티벌의 대명사로 성장한 인천의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전신이었던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이 열렸던 1999년 여름처럼 우드스탁 페스티벌 기간에도 거대한 장대비가 쏟아졌다. 그러나 평화를 갈망하는 젊은이들에게 그 비는 천혜의 샤워장이 되었고 진흙탕은 또 다른 놀이공간이 되었다.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는 50만명의 인원이 몰려 들었지만 음악을 통해 평화를 갈구하는 그들의 마음은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모든 갈등이 녹아내리고 화합하는 공존의 장으로 만들었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열렸던 60년대말로부터 이미 40년이 흘렀지만 그 시대의 고민이 지금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이데올리기에 대한 갈등, 전쟁, 인종차별,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 진보와 보수, 구새대와 신세대의 갈등 어느 하나 해결된 것은 없다. '테이킹 우드스탁'은 평화를 갈망하는 젊은이들의 거대한 꿈이 활화산처럼 폭발한 상징적 페스티벌이었고 그 정신은, 지금 여기서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