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 서가협회 인천지회장 이남례
   
 

서예를 뺀 인생은 생각해본 적 없다. 평생 서예와 더불어 살겠단 결심을 했다. 세상의 서예 서적을 한 권이라도 더 읽은 후에 생을 마감하리라 생각했다.

그사이 30년이 흘러 변화의 계기가 왔다. 서가협회 인천지회를 이끌어야 하는 수장의 소임이 주어졌다. 서예가 개인으로서 더이상 '나를 위한' 시간을 갖을 수 없었다. 서예가 얼마나 멋진 일인지 세상에 알려야 하는 일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회원들과 멋진 예술을 더 많이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하기 때문이다. 협회만을 위해 산 시간이 또 3년이다.

이남례 서가협회 인천지회장 얘기다. 1년중 가장 비중 있는 전시 '인천서예전람회' 초대장을 건네 뿌듯하다고 말한다. 15일까지 인천종합문예회관 전시실을 묵향으로 채운다.



 

   
 

▲인천서가협회를 위해

"서예는 너무나 매력적인 예술입니다. 결코 따분하다거나 고답적이지 않습니다. 더 더욱 학문과 인격을 겸비한 정신예술이지요. 사회를 정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어요. 저 혼자 누리기엔 이기적이지요. 다른 이들과 함께 공유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서가협회 인천지회장직을 기꺼이 맡은 이유다. 지난 2004년 서가협회 인천지회를 세우는 데도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그다. 한국 서단의 중심에 있던 인천의 옛 영화를 다시 살려보자는 의지로 서예인들이 뭉쳤다.
한국서예협회 초대작가로 중앙에서도 활동을 하고 있던 그에게 지회 창립의 중책이 주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초대 부회장을 맡는다. 이때까지만 해도 고민은 더 좋은 작품을 해야 한다는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2대 집행부가 꾸려지면서 지회장으로 추대된다. 더이상 사고지점을 서예가로서 1차적인 단계에 둘 수는 없는 일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나보다 협회가 우선이지요. 잠시 내 개인은 미뤄두기로 했습니다. 해야할 소임이라면 받아들여야지요."

회원들이 좋은 글씨를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서예술의 맛과 멋을 일반인들에게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데 다다랐다. 그러기 위해선 뭔가 일을 자꾸 벌여야했다. 시간이 갈수록 행사가 늘어갔다. 경로 휘호대회를 열고, 서예 체험행사를 만들고, 가훈써주기 행사를 하는 가 하면 회원 답사와 워크숍을 늘렸다. 아침일찍 집을 나서 자정 무렵 귀가하는 회수가 잦아졌다. 때론 지회 사무실에서 밤을 새우는 일도 생겼다. 몸은 고달플지언정 그럼에도 마음은 한없이 즐거웠다.

"예컨데 답사 떠나기전 회원들에게 소논문을 쓰게합니다. 유적 답사에서 만날 현판이라던가 비석 글씨들을 사전에 공부해서 제대로 느껴보자는 제안이었습니다. "

지회 분위기가 밝고 힘 넘치는 쪽으로 변해감을 느꼈다. 행사마다 척척 손발이 맞았다. 어느새 회원이 170여명으로 늘었다.

"밤새는 일이 어찌 즐겁지 않겠어요."




 

   
 

 

▲'제6회 인천서예전람회'

지회 행사 가운데 가장 비중있는 전시가 '인천서예전람회'다. 창립 이듬해부터 이어온 전시가 올래로 6회를 맞았다. 지난 9일 개막, 15일까지 인천종합문예회관 전관에 자리를 폈다.

"전국 공모전에서 우수작을 가려뽑는 인천지회 간판급 행사입니다. 해마다 수작의 출품작이 늘어가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회원들이 함께 일군 성과지요."

인천지역 여타 서예공모전보다 출품작 면에서 밀리지 않는다고 자부심을 건넨다. 이번 전시에서는 220여점의 입상작과 34명의 서가협회 초대작가 작품에, 특별히 입상자를 키운 스승 20명의 작품까지 내놓았다. 무려 274 점에 달한다.

"입상작만 보여주는 전시가 천편일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 특별함을 주고 싶었어요. 그들을 키운 스승의 작품을 함께 전시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전국에 있는 스승들에게 초대장을 발송했다. 20명의 서예가가 작품을 낸 배경이다. 초대작가도 대부분 작품을 보내왔다. 인천지회를 향한 따듯한 격려라며 환하게 웃는다.

"좋은 작품이 넘칩니다. 많은 이들이 와서 서예의 멋을 느끼는 자리가 됐으면 합니다."




▲"서예는 내운명"

서예를 한지 올해로 33년이다. 붓을 처음 잡을 당시 30년후면 글씨를 잘 쓰게 되지 않을 까 하는 바람을 가졌다. 첫 개인전 시점을 30년되는 해로 잡은 것은 그 때부터 구상이었다. 그리고 지난 2007년 30년을 맞으며 첫 개인전을 열었다.

"먼 훗날이라고 생각했던 해가 떡 하고 온거예요. 여전히 부족한데 말이지요. 전시를 해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지요. 전시 내용은 한없이 부끄럽습니다만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데 자부심을 갖자 했습니다."

힘든 만큼 얻은 것이 많았다. 서예의 깊은 맛을 느끼는 계기가 됐다. 두번째 개인전에 대한 구상을 묻자 '회갑전'이라는 즉답이 돌아온다.

"첫 개인전과는 다른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회갑전이라고 멀리 잡았는데 그사이 지회장을 맡아서 준비할 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걱정이 많다고 말한다.

대가가 되기 위해선 아직도 멀었단다. "서예는 하면 할 수록 매력적이면서도 어렵습니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실컷 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글·사진=김경수기자 kks@i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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