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해진 농촌 현실 그림속에 토해내다
피폐해진 농촌 현실 그림속에 토해내다
  • 심영주
  • 승인 201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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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예술인 // 49 서양화가 이종구


사실적 풍경 화폭에 담아 사회 부당함 비판·고발
사진·오브제 등 활용 작품제작 색다른 의미 전달
국토연작·소 주제 개인전 열어 우현상 수상 쾌거

 

   
▲ '풍경-봄 여름 가을 겨울'



이종구 화가의 작품엔 강렬한 메시지가 있다. 우리시대의 대표적 농민화가, 민중화가라 손꼽히는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그림 속에 그대로 표출해 낸다. 따가운 햇살에 타버린 피부와 노동으로 얻은 거친 손, 남루한 의복, 메마른 땅, 불에 타 까맣게 그을린 농토 등 이들은 그가 사회에 외치는 농촌의 현실이다. 노동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지만 외부의 힘에 의해 피폐해져 가는 농촌의 문제점을 고발한다.

30여 년 이어온 그림들 중 20여점을 골라 오는 15일까지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가온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인천 화단의 원로 강하진 화가와 함께하는 '중견 서양화가 강하진·이종구 2인2색전'이다.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강하진과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이종구, 상반된 성향을 가진 두 화가가 만나 20여점씩 내놓았다.

 

   
▲ '검은 초원'

▲"사회비판은 전문예술가의 또 다른 몫"
이종구 화가는 사회적 현실, 사실에 기초한 구체적인 풍경을 주로 화폭에 담는다. 그림은 단순한 형상이 아니라 관객과 소통하는 작가의 '언어'다.

"고향 충남 서산의 농촌풍경을 그린 '봄·여름·가을·겨울'이란 작품이 있습니다. 각기 다른 캔버스에 그려진 4계절이 하나로 모아져 큰 그림이 되지요. 하늘엔 미국의 거대한 델타항공기가 유유히 날고 있습니다. 그리고 황금 들녘엔 그 비행기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세계화란 이름으로 진행된 쌀 수입개방화가 우리 농촌을 피폐화 시킨다고 말한다.

군 제대를 마친 80년부터 본격적인 리얼리즘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군사정부의 독재, 특히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보며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생각했다. 자유가 억압되고, 민주주의가 말살되는 상황에서 현실을 외면한 채 개인적인 작품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민했다. 사회의 부당함을 비판하고 고발하는 것 또한 전문예술가의 몫이라고 결정했다. 그 중에서도 농촌에 주목했다.

"전통적으로 한국은 농경사회였고, 농촌은 우리의 먹을거리를 생산해 내는 가장 기초적인 곳입니다. 하지만 산업화와 자본주의, 정치적인 전략으로 가난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그들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의 그림 속엔 주름 가득한 얼굴에 인생의 고단함이 묻어나는 농부들은 물론, 시골집에서 본 것만 같은 파란·빨간색 물동이, 물을 뚝뚝 흘리며 걸려 있는 '몸빼바지', 농기구, 소 등이 등장한다. 그리고 농부가 딛고 있는 쩍쩍 갈라진 땅, 소의 뒤쪽으로 펼쳐진 불타버린 들판 등 관객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은 상징을 빼놓지 않는다.

▲표현수단의 다양화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이 한창이던 바그다드에 다녀온 지난 2004년,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전시회를 열었다. 하지만 그림 전시가 아니었다.
"그림으로 표현하기엔 전쟁의 잔인함과 처절함이 너무 부드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직접 사진을 찍었지요. 그리고 그 곳에서 가져온 깡통, 불타버린 종이, 유리파편 등 200여개의 오브제들을 지퍼 백에 넣어 걸었습니다."
이라크 체류 중 만나 찍었던 사람들의 얼굴사진을 붙여 그 위에 붉은 글씨로 '52142'라는 숫자를 적기도 했다. 당시 사망한 이라크 국민들의 숫자였다. 화가로서 그림을 그리진 않았지만 예술가로서 의미를 표현하는데 방식의 제한을 두고 싶진 않았다. 이미 84년 농부였던 아버지를 쌀부대 종이에 그리는 등 색다른 시도를 해오던 이 화가다.

그는 "관객과 소통하고 싶은 내용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림보다는 사진이나 오브제가 의미전달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백두대간을 그리다
곡식이 자라는 농토를 그리던 그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농토에서 확대된 개념, 국토를 그리기 시작했다. 농촌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벗어나 백두산부터 지리산까지 백두대간의 산세를 화폭으로 옮겼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좌우로 전개되는 압록강과 두만강, 덕유산과 지리산의 장엄함, 이 산들이 혈관처럼 이어져 한반도로 뻗어가는 산세는 이 땅에 살고 있는 바로 우리를 형상화 한다. 또 어둠이 내려앉은 산을 배경으로 보일 듯 말 듯 한 희미한 불빛이나 둥근 보름달은 희망을 상징한다.

이렇게 그린 국토연작들과 농촌풍경, 우직함의 상징 소를 주제로 '국토 : 세 개의 풍경' 개인전을 열었다. 이 전시회로 인천시문화재단이 선정하는 '제3회 우현예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은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얻은 결과이자 작가의 예술혼이 고스란히 살아난 성과"라고 평가했다.

그는 "인천이 낳은 위대한 한국 미술사학자 우현 고유섭 선생님을 기리는 상을 받았다는 것에 큰 영광을 느낀다"며 "더욱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의미로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올 초 인도와 미국을 다녀왔다. 아직도 귀족과 하층민이 존재하며 문명과 비문명,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나라 인도다. 미국은 세계 최고 강대국이자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나이가 들수록 나태해지는 것 같은 자신에게 자극을 주기 위한 여행이라고 말한다.

"어떤 분들은 저의 그림을 보고 불편하다고 하기도 합니다. 좋던 싫던 그림마다 어떤 기억,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이 살기 좋고 행복해지는 날까지 저는 계속 그림으로 말 할겁니다."

/심영주기자 blog.itimes.co.kr/yjs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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