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절을 생명처럼 여겨야 할 여자가, 더구나 자기 뱃속에 새생명을 잉태한 임부가, 외간 남자들한테 자기 몸을 허락한다는 것은 짐승보다 못한 천륜을 거역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라도 뱃속의 아기만큼은 꼭 낳아 길러야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다면 이곳 젊은 여자들이 쓰는 그런 방법도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다. 임신 4개월 된 뱃속의 아기를 죽이지 않기 위해 임부가 뱃속 아기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만큼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한테 자기 몸을 뇌물로 바치는 것은 이곳에서는 흉이 아니라고 말했다. 끝까지 살아 남아서, 자기 발로 관리소를 걸어 나가 뱃속에 있는 새생명을 낳을 때 핏덩이와 함께 아기를 낳기 위해 권력을 쥔 사람들에게 임부의 몸을 뇌물로 바친 능욕의 흔적들을 말끔히 쏟아내면 여체는 또 새로워진다는 것이었다. 임진왜란 때도 조선의 여성들은 이 땅을 짓밟은 왜군들에게 임부의 몸을 열어주며 가문의 대를 이어 나갔었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작업반 배치권을 쥐고 있는 대열과 보위원들이나 부지배인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뱃속 아기의 운명은 결정되니까 그때까지 만이라도 젊은 남자 죄수들을 조심하라고 했다.

 『젊은 남자들을 조심하라니요…기건 또 무슨 말씀입네까?』

 김유순 방장의 마지막 말이 이해되지 않아 성복순은 다시 물었다. 방장은 때묻지 않은 성복순의 곱상한 얼굴을 잠시 지켜보다 이곳 젊은 남자 죄수들은 하나같이 여자에 굶주린 이리 같다고 했다. 그래서 사회에서 젊은 여자들이 죄를 짓고 이곳으로 들어오면 마주칠 때마다 무언가를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다가와 살가운 모습을 보이고, 종국에는 몸까지 요구한다고 했다. 그러다 시기하는 사람들에 의해 부화질했다는 소문이 보위원들 귀에 들어가면 비판받게 되고, 끝내는 다른 곳으로 추방되거나 관리소 감옥으로 재수감 되어 형기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했다.

 또 사회에서 불량배 생활을 하다 이곳으로 들어온 질 나쁜 남자 죄수들은 오두막에 젊은 여자들이 새로 배치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야밤에 너댓 명씩 떼를 지어 몰려와 집 밖 으슥한 곳에 몸을 숨겨 잠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이곳 실정을 잘 모르는 신참 여죄수들이 집 밖으로 나가거나 소피라도 보러 나가면 살쾡이처럼 다가와 입을 틀어막으며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서 야수처럼 윤간하고는 어둠 속으로 달아나 버린다고 했다.

 그렇게 야밤에, 방향감각도 없는 으슥한 곳으로 끌려가 능욕을 당하고 나면 누구에게 하소연 할 수도 없다고 했다. 심정만 있고 물증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야밤에 밖에 나가야 할 일이 있으면 꼭 한방에 같이 생활하는 언니들과 두서너 명씩 조를 짜서 나가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눈 깜짝할 순간에 불한당 같은 남자들한테 능욕을 당해 부지배인의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뱃속의 아기부터 잃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