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의도 칼럼 ▧
공무원이 주민동향을 파악하고 경찰이 여당 선거운동원이던 시절이 있었다. 유권자에겐 고무신이 돌려졌고 곳곳에선 막걸리 판이 벌어지곤 했다.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이번에 처음 투표권을 갖는 청년들이 태어날 때 즈음의 이야기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6일 인천경제자유구역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했다. 이름은 비상경제대책회의지만 사실상 비상선거대책회의나 다름없어 보인다. 지방선거가 한 달도 남지 않은 이 시점에 대통령은 경제회의를 위해, 국무총리는 금양호 선원들을 조문하기 위해, 그리고 선거관리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진 대비 훈련 참관을 위해 인천에 다녀갔거나 방문할 예정이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그리고 행정안전부 장관이 한 지역을 동시에 방문하는 쉽지 않은 뉴스거리를 제공한 것이다. 경제회의를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금양호 선원들을 조문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며 지진에 대비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인천이 큰 대접을 받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찾은 인천경제자유구역은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이라는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전형적인 정책실패 사례이다. 산업시설이 아니라 아파트만 유치되고 있다. 65층 동북아 트레이드빌딩은 전망대만 제공할 뿐 건물은 텅텅 비어 있다. 얼마전 국무총리실 실사단에서 인천경제자유구역을 방문한 이후 정운찬 국무총리는 수시로 "경제자유구역이 바뀌어야 한다"고 발언했고 지난 2월 감사원은 감사 결과를 통해 "인천광역시장에게 앞으로 부당하게 경제자유구역청 사업과 예산운영 인사권 등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통보하기도 했다.

이렇듯 정부에서마저 낮은 외자유치 실적과 개발사업자에 대한 특혜를 지적하며 사실상 '실패'로 규정한 경제자유구역에서 지방선거를 코 앞에 두고 비상경제대책회의가 열렸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대통령의 선거운동이다.

이번 6·2지방선거는 지난 어느 선거보다도 유독 관권선거에 대한 지적이 빈번하다. 지방자치단체 및 중앙공무원은 물론 경찰은 교육감 선거에 개입해 정보를 수집한 문건이 공개됐고, 정치검찰은 유력 야당 후보들에 대한 표적기소를 서슴지 않고 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그랬고 최용규 전 국희의원이 그런 경우이다.
더욱이 선거관리위원회는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서도 한나라당이나 정부의 정책 홍보에는 다른 잣대를 대고 있다. 4대강 사업이나 무상급식 문제에 대한 일체의 찬반 집회, 현수막을 포함한 옥외 광고물을 금지하겠다고 한다. 이 쯤 되면 심판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와 관련해 한나라당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때마다 현장을 방문했다. 세종시 문제가 커지자 민생행보라며 충남·충북·대전을 방문해 회의를 주재하며 선심성 약속을 남발했다. 지난 2008년 총선에서는 대통령의 최측근 지역구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은평 뉴타운 공사현장을 깜짝 방문해 큰 논란을 일으킨 바도 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이제라도 대통령은 각 지역을 찾아다니며 선거운동에 개입할 것이 아니라 민생과 국정 현안부터 챙겨야 할 것이다. 대통령은 지난 재·보궐선거의 결과를 정권에 대한 평가로 보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그렇다면 이번 지방선거는 정권에 대한 평가로 인식하는 것일까. 노골적인 선거운동이 과연 도움이 될지 심히 걱정이다.

이명박 정부는 관권선거를 하면 할수록, 국민적 심판은 가혹해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6·2 지방선거가 금권·관권·북풍 등 부정선거의 경연장이 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정부가 박물관 창고에 처박혀 있던 부정선거를 다시 햇볕 속으로 끄집어낸다면 백주의 민주주의는 어둠으로 쫓겨나고 말 것이다. 고무신과 막걸리 선거는 사라져야 한다.

/홍영표인천 부평을·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