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작 프리뷰-내 깡패 같은 애인
'해운대'에서 말끔한 국제해양연구소 지질학자를 연기했던 박중훈이 '거리의 루저'로 돌아왔다.
오는 20일 개봉하는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은 싸움 못하는 무늬만 깡패인 남자와 깡 센 여자의 유쾌한 사랑이야기다.
큰 형님을 대신해 감옥살이까지 대신하고 돌아왔지만 특별대우를 약속했던 조직은 동철(박중훈)에게 별다른 역할을 맡기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조직 사무실로 찾아가는 게 일상의 전부인 그는 어느 날 자신의 옆방으로 이사 온 세진(정유미)을 만나면서 조금씩 변한다.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부푼 꿈을 안고 서울로 취직한 세진은 회사가 3개월 만에 부도나는 바람에 반지하방에 세를 든다. 열심히 이력서를 내며 일자리를 찾지만 지방대학 졸업자에 경력이 없는 그녀를 받아주기는커녕 면접에서 제대로 된 질문을 하는 회사조차 없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구직활동을 벌이던 세진은 이웃사촌인 동철과 사사건건 부딪치며 티격태격한다.
세진은 처음엔 자신이 깡패라며 눈을 부라리는 동철에 겁이 나지만 비오는 날 면접을 보러 가는 자신을 위해 우산을 사다주고 보통사람한테도 맞고 다니는 등 '뭔가 이상한' 이 건달이 왠지 싫지 않다.
김광식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는 깡패를 소재로 하지만 폭력적이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액션느와르는 아니다. 오히려 세진을 통해 우리 사회 청년실업을 투영해 내는 등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에서 조연출을 맡았던 김 감독은 나름의 비전과 실력을 겸비했지만 지방대학이라는 벽에 부딪혀 변변히 말할 기회조차 못 잡는 지방대학생들의 아픔을 사실감 있게 그려낸다.
또 극 중 "프랑스 애들은 일자리 달라고 때려 부수고 난리를 치는데 우리나라 애들은 참 착해. 취업 못 하는 게 지들이 모자라서 그러는 줄 알아. 다 나라가 잘 못해서 그러는 건데, 너 자책할 필요 없어. 힘내"라고 말하는 동철의 말은 사실이건 아니건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충분한 위로가 된다.
열혈 취업생을 연기한 신예 정유미는 국민배우 박중훈 못지않게 빛나는 연기를 보여준다. 정유미는 당차면서도 순수하고 엉뚱한 면모를 보이는 세진을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 단편 '폴라로이드 작동법'으로 데뷔, '사랑니', '좋지 아니한가'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쌓은 그녀는 '가족의 탄생'으로 2006년 청룡영화제 여우조연상을 거머쥐며 차세대 연기자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시종일관 이끌어 가는 건 역시 데뷔 24년을 맞은 베테랑 박중훈의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스런 연기다. 때리는 것보다 맞는 횟수가 더 많은 삼류 건달을 리얼하게 표현하기 위해 그는 액션스쿨에서 맞는 연기까지도 훈련하며 체중 6kg을 감량했다.
박중훈은 또 거친 욕들을 마치 욕쟁이 할머니처럼 구수하고 정감 넘치게 구사하며 거부감 없는 웃음코드로 만들어 간다. 그의 장기인 능청스런 코믹연기는 다소 늘어지는 중반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게 하는 힘으로 역할한다. 100분. 15세 이상.
/심영주기자 (블로그)yjsh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