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진 어둠
그늘진 어둠
  • 승인 201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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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칼럼/
오랫동안 역학칼럼을 연재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은, 무딘 글 솜씨임에도 이해가 쉽고 내용이 피부에 와 닿는다는 독자들의 평을 들을 때다.
다만 미안한 것은 독자들과 호흡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논리적인 글보다는 보다 생생한 사례를 근거로 글을 쓰려고 욕심을 내니, 필자에게 상담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얘기는 쓰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래서 좀 더 사실에 근접한 사례를 실례로 쓰고 싶은 마음을 많이 접을 수밖에 없는 점이 아쉽기만 하다.
한동안 소식이 없던 미스 최가 늦은 시각에 연락도 없이 방문했다.
"요즘 사업이 어렵지?"
2002년 급성 간암으로 돌아가신 부친의 사업체를 이어가느라 많이 수척해진 모습이 그 간의 어려움을 말해주고 있었다.
"최근 불경기로 영업도 안 되고 비싼 인건비에 적자가 계속되어 공장을 유지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처분하고 서울로 올라갈까 해서요." "그래 생각 잘했어. 차라리 시집이나 가."
워낙 불경기라 모두들 힘들어하는 세상에, 처녀의 몸으로 사업을 이끌어간다는 것이 무리라 생각되어 한마디 했더니 펄쩍 뛰었다.
"아빠가 하시던 사업을 제가 그만 둘 수는 없고 서울로 장소를 옮겨 새롭게 다시 시작할까 해서요."
그러면서 문득 돌아가신 아빠 생각이 나는지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들더니 금세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게 하고 다른 얘기로 화재를 돌리고 나자, 마음이 좀 진정되었는지 밝게 웃으며 물었다.
"앞으로 제 사업 운이 어떤지 좀 봐주세요."
남자도 하기 힘든 사업을 미혼인 여성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에 그녀의 고충이 마음에 닿았다.
"그만두는 거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힘들어도 그냥 유지하도록 해."
운이란 막힘과 형통이 항상 공존하는 고로 걸림의 때에 있어 변화를 시도하는 것에 자제를 권했더니, 순간 그늘진 어둠이 그녀의 이마에 살포시 내리는 걸 감지했다.
다음 : 운명의 내비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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