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비서를 따라나온 종합지령실의 보위원이 소리쳤다. 옥남 언니는 큰 화를 당하기 전에 빨리 따라가라고 등을 밀었다. 복순은 온몸이 화끈 달아오르는 돋는 듯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부비서를 따라갔다. 부비서는 왼쪽 소매를 펄럭거리며 앞장서 걸었다. 관리소 사무실 입구까지 따라가다 보니까 부비서는 왼쪽 팔뚝이 없는 외팔이였다.

 옛날에는 분명히 두 팔이 멀쩡했는데…?

 복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가 들어간 부비서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부비서는 쓰고 있던 레닌모를 벗어 책상 위에 던져 놓으며 담배를 빼물었다. 그리고는 길게 담배연기를 뿜어내며 명령하듯 말했다.

 『앉으라우.』

 복순은 쓰고 있던 머릿수건을 벗으며 사무실 바닥에 꿇어앉았다. 부비서는 빡빡 깎은 복순의 알머리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 언젠가 오마니한테서 전연지대에 복무하는 군인 동무한테 시집가서 잘 산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케 된 기야?』

 복순은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좋을 지 몰라 그냥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부비서는 빡빡 깎은 복순의 알머리가 흉하게 느껴지는지 벗어놓은 자신의 레닌모를 던져주었다.

 『야, 그 민대가리 보기 싫다우야. 이 모자라도 좀 덮어 씌우라.』

 복순은 부비서가 던져 준 레닌모를 받아쓰고 고개를 들었다. 부비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실쭉 웃었다.

 『음, 기러니까 옛날 고운 모습이 좀 나타나는군…. 와 묻는 말에 대답이 없네?』

 『전연지대 지뢰사고로 세대주가 죽었시요. 기러구 한 집에 사는 군인가족 언니를 도와주다 일이 꼬여 여기까지 오게 되었시요.』

 『길케 됐구만.』

 부비서는 안 되었다는 표정으로 몇 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열과에다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그녀의 개인문건을 관리하는 늙은 보위원이 달려왔다.

 『동무가 며칠 전에 직보(直報) 한 신입자가 여기 앉은 238번이야?』

 늙은 보위원은 긴장한 빛을 보이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재빠르게 눈동자를 굴리며 꿇어앉아 있는 성복순의 거동을 살폈다. 언뜻 보기에는 부비서가 성복순을 싫어하는 눈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렇지만 왜 불렀는지 속내를 알기 위해 문 앞에서 잠시 서 있었다. 부비서는 피우고 있던 담배꽁초를 비벼 끄며 성복순의 개인문건을 좀 보자고 했다.

 보위원은 부리나케 대열과로 달려가 성복순의 개인문건을 빼 왔다. 부비서는 성복순의 개인문건을 받아들고는 옷도 갈아 입혀 오라고 일렀다. 늙은 보위원은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성복순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부비서가 성복순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늙은 보위원은 성복순을 데리고 대열과로 갔다. 타자수가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지시를 받을 자세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