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인천의 미래를 보다
교동도 연륙교 물살에 공사난관

숙원사업·제방붕괴 우려 두얼굴

휴양지 꿈꾼 섬돌모루 흉물방치




인천 도서에 대한 관심이 다시 뜨거워 지고 있다. 인천 도서는 문화, 생태적, 남북 대치 상황의 정치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인천 시민, 학계, 연구기관, 환경단체, 언론이 지난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문화적, 생태적, 정치적 중요성을 집중 조명했다.

2010년 다시 인천 섬을 찾아 인천 도서에 대한 가치와 주민들의 애환을 세상에 내 놓는다. 인천일보와 인천의제21, 인천녹색연합 등 '바다에서 인천의 미래를 보다'란 주제로 4월부터 12차례에 걸쳐 인천 강화군, 옹진군의 40여개의 섬을 돌며 문화, 생태, 주민 생활상에 대해 탐사한다.

그 첫 번째 탐사가 지난 4월 15~16일, 22~23일 두 차례에 걸쳐 강화군 교동도, 석모도, 서검도, 미법도, 섬돌모루 섬에서 진행됐다. 백령도 앞바다에서 천안함이 침몰된 이후, 강화도 민통선 안의 섬 주민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있다. 섬 주변 천연의 어장인 갯벌에서 조개 잡이, 그물치기 등 주민들의 맨손 어업이 전면 통제됐기 때문이다. 관광객은 줄어들고, 조업 횟수도 줄어들고 있다. 그에 따라 민통선 주민들의 시름만 깊어지고 있다. 강화도 교동도, 서검도, 미법도, 섬돌모루 지역의 중요한 생태적·문화적 가치를 지난 천연기념물급 조류 서식지와 갯벌, 문화재, 도서는 역시 아무런 보호 조치 없이 방치되고 있었다.

/노형래기자 blog.itimes.co.kr/trueye



1 교동도와 섬돌모루


#. 물길을 우습게 보지 마라

4월15일 오전 11시쯤 인천 강화도 창후리 선착장에 인천녹색연합, 인천의제21, 인천환경운동연합, 인천녹색회 등 12명의 인천연안도서 탐사팀이 모였다. 올해 해양 탐사 첫 번째인 교동도를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강화도 창후리~교동도 뱃길 운항시간은 물이 많이 차는 사리때 15분이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물이 낮아지는 조금때는 뱃길 중간에 거대한 모래톱이 들어나, 그 모래톱을 빙돌아 갈 수 밖에 없다. 교동도를 가는 중간에 강화~교동 연륙교 사업 현장이 한 눈에 보였다. 하지만 교각 공사 현장이 한가롭기만 하다. 이유는 교동도, 강화도 사이의 거센 물살 때문이었다.

거센 물길이 강화도와 교동도를 잇는 다리 공사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강화도~교육도 연륙교 공사는 지난 2008년 10월 우여곡절끝에 착공식을 마쳤다. 공사 책임은 대우건설이 맡아 하고, 해상 가교 설치 등 해상공사는 전문업체인 삼보ENC가 맡았다. 하지만 지난해 말 갑자기 이 업체가 해상공사를 중단해 버렸다. 거센 조류로 바닷속 가설 말뚝 시공에 차질을 빚은 것이다. 결국 이 업체는 지난 2월 공식적으로 해상 말뚝 설치 공사를 접고 철수해 버렸다.

당초 예상보다 조류가 거세 가교 설치를 위한 해상 말뚝 설치 기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 곳은 모래와 뻘이 섞인 실트질이기 때문에 해상에 교각을 고정시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수 밖에 없다. 고정해 놓은 말뚝이 하루 사이 1.5미터까지 움직여 도저히 공사가 불가능했다. 공사를 위해 투입된 1천500톤급 바지선도 결국 거센 물살을 견디지 못하고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곳의 유속은 당초 초속 2.1미터 정도로 예측됐다. 하지만 실제 유속은 초속 3~4미터까지 거세 공사가 지연될 수 밖에 없었다. 강화~교동간 다리는 전체 3.44km이며, 이중 2.11km가 해상 공사 구간이다.

다리가 완성되면 이 곳의 물길과 유속이 어떻게 변할 지 몰라 주민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 특히 교량 설치도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조력발전소 제방이 이 곳에 설치되면 교동제방이 여기저기서 터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교동도를 휘감고 있다. 교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주민들은 이미 교동의 물길을 막아서는 안되는다는 원리를 몸으로 체험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교동도는 전체 면적 47.16㎢중 65%가 바다를 막아 만들어진 매립 농토다. 매립은 15세기부터 진행된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본격적인 매립은 조선후기부터 진행된다는 것이 학계와 주민들의 설명이다. 특히 교동평야는 바로 맞닿은 연백평야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연백 평야와 교동평야는 같은 시기에 경쟁적으로 매립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교동의 제방은 조류의 유속, 방향과 큰 연관성이 있다. 연백군에서 매립을 하면 사이 물길과 유속이 빨라져 그대로 교동평야를 삼켜버렸다.

그래서 교동도와 석모도에는 제방이 모두 갈빗살 모양이다. 교동도와 석모도는 방향이 바다로 뻗은 갈빗살 모양의 제방이 수 없이 많다. 매립과 제방으로 막힌 물길의 방향을 돌려놓기 위해 갈빗살 모양의 제방이 발달했다. 강화~교동~서검도를 잇는 대규모 조력발전소 제방이 놓여지면 교동평야를 감싸고 있는 뚝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점점 퍼지고 있다.


#. 인간의 탐욕과 섬돌모루

강화군 석모도에서 200m떨어진 곳에 섬돌모루라는 작은 섬이 있다. 섬 전체는 느린 걸음으로 1시간 정도 걸으면 다 돌 수 있는 작은 섬이다. 섬돌모루는 20년전 섬 전체가 통체로 개발돼 방치돼 있다.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섬이 얼마나 흉물스럽게 방치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다. 최근 굴업도를 대기업에서 개발하는 상황에서 섬돌모루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알아보자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섬돌모루에는 인공 호수 2개와 3층 규모의 숙박용 콘도 2채, 인공폭포, 수영장, 해수욕장, 낚시터, 소나무 산책길 등이 있다. 하지만 콘도 건물은 뼈대만 남은지 오래이고, 수영장은 땅에 묻혀 버렸다.

현재 인공호수는 바닷물이 들어와 ??어가며, 악취를 풍기로 있다. 제방은 여기저기가 무너져 흉물스럽데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시설물만 흉물스럽다. 작은 산의 소나무와 섬 내부는 잘 정돈돼 있다. 지난 1992년 이 섬에 들어와 나가지 못하고 20년째 이 섬을 관리하는 이계용(78)씨 덕분이다.

섬돌모루는 지난 1980년 후반 전두환 전 대통령 경호실장 안씨의 형이 개발하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안씨는 그 당시 500여명 투자 회원에게 수 백억원을 모아 섬돌모루를 회원제 휴양시설로 개발했다. 하지만 콘도, 수영장, 낚시터 등 시설물이 50%이상 설치된 1992년 일이 터지고 말았다.

안씨가 아무런 허가를 받지 않고 무허가로 섬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뒤늦게 확인한 관할 행정기관인 강화군은 무허가 설치물을 철거하고 원상복귀 명령을 내렸다. 정권이 바뀌면서 권력의 중심에 있던 안씨는 이 사건으로 구속되고 만다.

이계용씨는 1990년대 초 이 시설물의 관리인으로 이 곳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 섬의 소유권이 (주)섬돌모루주식회사에서 (주)강화개발로 넘어가고, 재미교포가 개발 지역 일부를 매입하면서 섬을 떠날 수 없었다. 섬돌모루 개발 사업이 마무리되지 않아 이 곳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섬돌모루는 현재는 개발권, 토지 소유, 관리권 등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키면서 표류하고 있다. 십 억원 이상이 이 섬에 묶여 있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이다.

"이 섬을 나는 떠날 수가 없어. 이 섬이 제대로 개발되어서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으면 좋겠어. 한 번 섬 개발이 이뤄지면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니겠어" 이계용씨는 쓴 웃음을 지었다.


2편에서는 '주민들의 삶과 생태가치'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