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론
어떤 정부도 교육을 망치겠다고 정책을 추진하지는 않는다.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접근 방식이 현장과 맞지 않으면 탁상 행정이 되고 만다. 탁상 행정의 문제점은 단순히 정책이 실패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특히 정책 입안자들의 의욕이 지나쳐 단기간에 목표를 달성하고자 할수록 그 후과는 상당 기간 동안 학교를 뒤흔들어 놓는다. 현 정부가 추진한 '학교 자율화' 정책에 대해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말이 좋아 '학교 자율'이지 학교장 권한만 강화해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의 권리는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학교가 자율적으로 움직이려면 자치구조가 탄탄해야 한다. 그런 학교자치는 학교 구성원들이 권한을 나눠 가져야 이룰 수 있다. 정책 목표는 '학교 자율'인데 교장에게만 권한을 몰아주다 보니 '학교장 맘대로' 학교를 운영하는 폐단이 속출하게 되었다.
인천의 현직 교장 40명, 전직 교장 7명이 급식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았다. 그들 중 셋은 경찰에 나가 그 사실을 인정했으나 나머지는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업체의 장부와 학교장의 진술 중에 어느 쪽이 진실인지 밝혀내는 일은 수사와 감사 기관의 몫이다. 다만, 급식 납품업체를 선정하는 권한을 학교장이 독점하게 만든 과정은 파헤쳐 봐야 한다. 학교에서 급식 납품업체를 선정하려면 학교급식소위원회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 학부모와 교사, 학교운영위원들이 참여하는 학교급식소위원회에서 납품업체 순위를 정해 교장에게 추천해 왔다. 학교장이 특정 업체와 유착했다는 의혹을 감수하면서 순위를 바꾸기는 힘들었다.
작년에 인천교육청은 순위를 정하지 말라고 지침을 바꿨다. 급식업체들이 품질 경쟁보다 교장실 출입을 영업으로 삼도록 길을 내준 꼴이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교장 모두가 교장실에서 직접 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교장의 권한이 강화되어 급식업체 선정권을 독점하게 되자, 경찰의 표현대로 '관행적으로' 뇌물수수가 이뤄지게 된 것이다.
문제는 교장실에서 일어났는데 인천교육청은 교사들을 닦달했다. 사이버 청렴 연수를 이수한 후 실적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학생과 학부모를 만나고 쌓인 업무를 처리해야 할 학기 초, 교사들은 컴퓨터에게 심문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자정 결의대회도 옛 시절 그 모습대로 재연했다. 교육비리는 서울에서 터졌고 교육감이 저지른 일이었다. 돈으로 직위를 사고판 장학관, 장학사, 교장들이 줄줄이 소환되었다.
인천에서도 당연히 직책이 높은 이들부터 책임을 따져 묻는 게 순서였다. 권한이 있고 책임질 일이 있는 곳일 수록 비리가 발생할 개연성도 높다. 교육계에서 발생한 비리를 교사들에게 떠넘기면 여론은 피해갈 수 있지만 비리의 핵심구조를 드러내지는 못한다. '학교 자율화' 이후 교장은 학교 안에서 절대자가 되었다. 교사들이 행사할 수 있는 결정권한이 없는데 그들이 청렴 서약을 백 번하고 결의대회를 천 번 한들 학교는 맑아지지 않는다.
학교에서 행사할 권한은 학교장에게 집중되어 있다. 교장이 변해야 학교가 맑아진다. 정부가 서둘러 교장공모제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인천교육청도 공모제 교장을 50%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처럼 한다면 무늬만 공모제일 뿐이다. 교장 자격증이 있어야 공모에 응할 수 있으므로 비리 발생소지는 남는다. 서울의 인사비리는 교장이 되려는 과정에서도 일어났다. '강북에서 강남으로 가려면 뱃삯을 내야' 한다는 판에 공모를 둘러싼 잡음이 없어질 리 없다.
교장 자격증 제도를 없애고 교장을 마치면 평교사로 되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교장이 독점하고 있는 권한을 나눠 교사, 학부모, 학생이 학교 운영에 참여하도록 보장해야 한다. 학교에서 자율을 누리는 이들을 늘릴수록 비리가 발생할 가능성은 줄어들게 된다. 학교 자율화 정책부터 뜯어 고쳐야 교장의 비리를 차단할 수 있다.



/임병구 인천학교급식시민모임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