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의 미추홀( 561 )
'도시락'을 '벤또'라고 말하던 때가 있었다. 식민지 잔재였는데, 50년대 말만 해도 누구나 그걸 그냥 썼었다. 소가죽 '란도셀(책가방)'을 메고 다니던 국민학교 때는 아침·점심반이 있어 벤또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중학교에 들어가 비로소 벤또를 먹게 되었다. 그때부터 어머니들은 난처한 일일 과제와 씨름할 수밖에 없었다. 밥도 그렇지만 반찬 마련이 더 큰 문제였다. 점심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서로 좋고나쁨이 비교가 됐기 때문이다.

지금 필자가 기억하는 고정 메뉴는 멸치볶음, 채 장아찌, 고추장, 어묵 등이었고, 어쩌다 계란 프라이가 들어 있는 날도 있었다. 그렇다고 벤또 뚜껑을 가리고 부끄러워하며 점심을 먹었던 적은 하늘에 맹세코 없었다.

반찬은 매일 그게 그거였지만 어린 나이에도 어머니의 손맛사랑이 그에 담겨 있음을 나름대로 느끼고 있었다. 하긴 제 자식이 먹을 밥을 귀찮아 하며 '보면 못 먹을 걸' 줄 어머니가 이 지구상에 어디 있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한국 어머니들은 안 됐다. 자식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제대로 먹이질 못 한다.

이른 아침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집을 떠나고 나면, 점심과 저녁은 전적으로 남의 손에 내맡기고 사는 처지이다.

그런데 그 학교급식이 탈이어서 또 속을 썩는다. 급식에 책임을 진 일부 교장들이 학생들의 밥값을 떼먹는가하면, 식중독 사고는 언제부턴가 뉴스 축에도 못 끼는 상황이다. 거기다가 '무상급식'이라는 묘한 정치바람까지 불어대 어리둥절하다. 무엇이 사회의 발전일까? 그 옛날의 '벤또'가 오히려 그리워진다.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