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컵동아시아핸드볼 결산

초·중·고 감독·선수 '진행요원' 등 헌신적 참여

국내팀, 핸드볼 강대국 답게 한차원 '높은 실력'

올림픽영웅 수없이 배출했어도 자료관리 미흡

핸드볼 인프라·저변활용 세계명품대회 도약을

인천에서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2010인천컵동아시아 실업핸드볼선수권대회가 열렸다.

인천에서 국제대회가 열린 것은 지난 2007년 제1회 인천시장배대회 이후 3년만이다.
인천핸드볼협회를 중심으로 한 인천핸드볼가족은 오랜만에 개최되는 국제핸드볼대회의 성공을 위해 모두 하나가됐다.

인천의 초·중·고 9개 핸드볼부 감독과 선수들은 곧 대회출전을 앞두고서도 인천에서 개최되는 국제핸드볼대회의 성공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모두 합심한 인천핸드볼은 이번 대회 참가자들로부터 '완벽하다'는 극찬을 받으며 그동안의 땀의 결실을 얻었다.

언론사로서는 유일하게 2010인천컵동아시아대회 실업핸드볼선수권대회를 후원한 인천일보는 지난대회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인천핸드볼의 발전방안을 짚어봤다.


▲인천 왜 핸드볼인가!

실내 단체구기 종목 중에서 체급 제한 없이 몸싸움이 가장 심한 핸드볼 경기에서 키 크고 몸집 큰 유럽의 강호들과 맞붙어 싸워 이겨 시상대에 오르려면 목숨 걸고 죽기 살기로 덤벼 싸워야 한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전에 한국의 핸드볼 팀이 올림픽에서 우승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핸드볼은 해냈다. 여자 핸드볼 팀은 1984년 미국 LA올림픽부터 2008년 베이징올림픽까지 7회 연속 출전해서 2번 금메달, 3번 은메달, 1번의 동메달을 따냈다. 남자팀은 6회 출전해서 은메달 1번, 6위와 8위의 기록을 남겼다.

김종하 대한핸드볼협회명예회장의 저서 '당신들은 왜 핸드볼에 목숨을 거는가?'의 글귀다.
김종하 명예회장이 저서에서 밝힌 것처럼 핸드볼은 올림픽과 아시아경기대회 등 대형 스포츠 행사에서 한국의 가장 확실한 메달종목이다.

한국핸드볼이 거둔 업적은 국내 스포츠 종목 가운데 가장 위대하고 눈부시다. 이 핸드볼이 거둔 위대학 업적의 중심에 인천핸드볼이 있다. 그래서 한국의 핸드볼관계자들은 인천을 '핸드볼도시', '한국핸드볼의 메카'라고 부른다.

지난 2007년에 이어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3일간 인천시립도원체육관에서 열린 '인천컵동아시아 실업핸드볼선수권대회'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회 개회식에 참석했던 김종하 명예회장은 "인천은 한국 핸드볼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중요한 곳이다. 이런 곳에서 동아시아핸드볼대회가 열려 더욱 뜻 깊습니다"라며 인천이 갖는 핸드볼도시로서의 위상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한국핸드볼이 올림픽에서 괄목할만한 업적을 얻은 중심에는 항상 인천선수들이 역할을 했다.

지난 2008년베이징올림픽때 오영란(38), 박정희(35), 김남선(29), 문필희(28), 김온아(22) 등 벽산건설 소속선수가 무려 5명, 홍정호(36·구월초-상인천여중-인천여고), 송해림(25·서흥초-인화여중-비즈니스고) 등 인천출신 2명 등 7명의 인천선수가 활약했다. 주전선수 7명을 인천선수만으로 구성이 가능할 정도다.

우리생애최고의순간(우생순)의 감동드라마가 연출됐던 2004 아테네 대회 때는 오영란과 문필희 외에 이상은(35·구월초-인화여중-비즈니스고)선수까지 3명이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이전에도 한국핸드볼이 올림픽에서 거둔 수많은 메달 뒤에는 항상 인천 핸드볼선수들이 3명 이상 빠짐없이 주전으로 뛰었다.
곧 '한국핸드볼국가대표=인천선수'라는 공식이 보편화됐다.

▲인천컵동아시아대회가 남긴 것은

인천핸드볼선수들의 뛰어난 성과에 비해 인천의 저변은 그리 높지 않다.
시설은 시립도원체육관이 유일하다.

국제대회를 개최한 경험도 지난 2007년 6월22일부터 29일까지 시립도원체육관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 덴마크 등 4개국이 참가하는 '인천시장배 2007국제실업핸드볼 대회'를 개최한 것이 처음이다. 이번 인천컵동아시아대회는 2번째 개최하는 국제대회이다.

인천컵동아시아대회는 지난 2007년대회때 유럽의 덴마크가 참가했던 것보다 규모면에서 축소됐다.

이마저도 대회개최시기를 한 달여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대회가 확정될 만큼 대회준비면에서 다소 미숙했다는 지적이다.
참가팀도 일본과 중국, 한국 등 남·여 각 4개 팀씩 8개 팀에 불과했고 외국 참가팀의 실력은 한국 팀과 상당한 기량차이를 보였다.

지난 2007년 세계최강 덴마크가 참가하면서 대회의 질을 높였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대회는 질적인 면에서 동아시아국가들간 화합과 친목을 도모했다는 것 외에는 크게 내세울 만한 게 없다.

이미 한국핸드볼은 실업팀이라 하더라도 중국과 일본의 동아시아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대회 내적으로 이같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인천컵동아시아대회는 인천핸드볼의 재발견이라할만큼 가능성을 보여줬다.

특히 대회에 참가한 8개 팀 가운데 인천 팀인 인천도시개발공사 이승재 감독(52)과 벽산건설 임영철(50) 감독 외에 삼척시청 이계청(42) 감독, 두산베어스 이상섭(41·정석항공고 23회졸업) 감독, 일본 소니SC 곽혜정(37·인화여중-선화여상(현 인천비즈니스고)-인천전문대) 등 무려 5개 팀 감독이 인천출신이거나 연고가 있는 감독들이다.

벽산건설은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며 대회 2연패를 안았고 인천도시개발공사는 비록 국내 최강 두산에 패해 준우승했지만 언제든 정상에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인천 실업팀만으로 대회를 치르더라도 충분히 세계수준에 걸맞은 대회를 치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이번 대회를 통해 확인했다.

또 대회기간 내내 김종하 명예회장을 비롯 한국핸드볼의 주역들이 인천도원체육관을 찾았고 인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여줬다.

이외에도 한국핸드볼이 배출한 수많은 올림픽 영웅들도 대회장을 찾아 참가선수들을 격려했다.

▲더큰 규모의 대회를 향해

인천컵동아시아대회라는 국제핸드볼대회가 인천에서 개최되기까지 무려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시간이 이처럼 오래 걸린 것은 중국 쓰촨성 대지진과 금융위기 등의 악재가 겹친 탓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세계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인천핸드볼의 상품화에 대한 인식부족이 크다.
대한핸드볼협회나 인천핸드볼협회나 올림픽과 각종 세계대회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루고서도 역사적 자료 관리나 정리에 소홀했다.

그래서 인천에서 수많은 올림픽영웅들이 배출됐지만 정확하게 누가 언제 있었는지에 대한 자료가 명확치 않다. 다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뿐이다.

당장 인천 팀인 벽산건설과 인천도시개발공사에는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즐비하다. 이들 선수 하나하나는 모두 세계적인 톱클라스 선수들이다. 세계핸드볼계에 이름만 대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선수들이다.

과거에는 너무나 많은 스타들이 인천에서 배출됐다.

인천에서 개최되는 국제핸드볼대회가 더욱 빛이 나려면 이런 스타급 선수들이 대회에 선수와 진행요원으로 참여해야 한다. 또 인천에서 동아시아대회를 넘어선 세계적인 명품 핸드볼대회를 개최해야 한다. 인천이 가진 핸드볼 인프라와 저변은 세계시장에서 얼마든지 명품대회를 개최할 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다.

인천핸드볼협회 관계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핸드볼도시 인천은 세계핸드볼을 끌어 들일 수 있는 충분한 자격요건을 갖추고 있다"며 "인천컵동아시아대회 개최를 계기로 세계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묘안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백범진기자 bjpaik@itimes.co.kr
/사진=박영권기자 (블로그)p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