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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경에서 참 재미있는 돈을 봤다. 돈의 이름은 우리도 잘 아는 만화캐릭터 '아톰'이다. '아톰' 원작자의 '사람들 간의 연대를 소중히 하여 지구의 미래를 지킨다'는 이념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톰'만화의 무대였던 동경 다카다바바 지역에서 '아톰'으로 물건을 사던 재래시장 사람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지역통화 '아톰'은 10마력, 50마력, 100마력짜리 지폐로 발행되는데, 1마력의 가치는 법정통화 1엔과 같다. '아톰'이 필요한 사람은 재래시장위원회에 찾아가서 그 이유를 밝히고 현금과 교환한다. 일반 소비자들은 재래시장 청소를 돕거나 리사이클백을 가지고 상점에 가면 '아톰'을 얻을 수 있다. 지역통화란, 문자 그대로 지역공동체안에서만 통용되는 돈이다. 현재 일본의 다양한 지역에서 이런 돈이 유통되고 있고, 또 그 형태도 매우 다양해 아톰과 같은 지폐 이외에도 통장이나 전자화폐의 형태도 있다.

화폐와 금융에 대해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일본에서 지역통화가 유행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지역경제 활성화 때문이다. 지금 일본에선 76조엔 어치나 되는 은행권이 발행되고 있다. 그 중 약 70%가 개인소유이니 가계는 53조엔 정도의 현금을 가지고 있고, 전체인구 1억2천500만명으로 나누면 한명 당 44만엔, 4인 가족의 경우 176만엔이나 되는 현금을 소유하고 있는 꼴이 된다. 그러나 실제 이런 거액의 현금을 가지고 있는 가정은 거의 없다. 시장원리 하에서 돈은 소수의 사람들의 지갑으로 다 집중되기 때문이다

반면 지역통화는 그 지역의 구매력이 다른 곳에 쏠리지 않고 바로 그 지역에서 발휘된다. 왜냐하면 지역공동체안에서만 통용되는 돈은 밖으로 유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톰'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은 많지만, 그 대부분이 다카다바바 지역의 상점들이다. 따라서 '아톰'은 이 지역에서만 사용되기 때문에 이 지역의 안정적인 소비 수요가 확보돼 결국 지역경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또 지역통화는 환경이나 복지와 같은 지역사회의 공생사업을 융성케 한다. 지금까지 소비자들이 1회용 비닐주머니가 아닌 리사이클백을 지참하거나 주민들이 지역 재래시장의 청소를 도왔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순수한 봉사활동을 위한 것이었으나, 지역통화가 도입된 이후는 인센티브로 인해 크게 활성화되었다. 예를 들어 청소 1시간 당 500엔어치 지역통화가 지불된다 하면 이는 당연히 지역통화를 받는 그 지역의 가게에서 소비된다. 그러면 지역통화를 받는 가게는 결국 광고를 하거나 할인을 통해 손님을 모으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다카다바바 지역은 상점이 재래시장통화위원회에 '아톰'을 가지고 가면 현금으로 교환할 수 있게 돼 있다. 이 경우 상점의 비용부담은 전혀 없다. 반면 소비자는 지금까지 무상으로 봉사해왔던 사회활동으로 보수를 받게 된다. 즉 소비자에게도 지역통화는 고마운 존재인 것이다. 물론 지역통화가 환경문제에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역통화의 장점이 가장 많이 발휘될 수 있는 것은 복지분야이다. 예를 들어 독거노인에 대한 요양보호를 세금을 써가면서 프로에게 위탁하는 것보다 그 지역주민들이 직접 부업으로 참가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이에 참가한 지역주민들에게 지역통화로 사례를 지불하게 되면, 지자체의 재정부담도 적어지며 자신에게 익숙한 곳에서 요양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는 노인들의 만족도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역통화는 그 지역만의 금융정책을 수립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지금까지 은행권은 전국공통화폐이므로 금융정책은 전국 동일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지역통화가 널리 활성화되면 경기가 안좋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지역통화를 투입하는 방식의 경기대책이 가능해진다. 일본에서 '아톰'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것은 바로 이같은 금융정책에 대한 기대 때문이리라. 인천의 경제상황은 어떠한가? 또 환경과 복지는 어떤 수준이며, 지자체 재정은 어떤 상황에 직면해 있으며, 지역의 금융정책은 중앙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운가? 이제 지역통화는 하나의 선택지가 아님을 인식해야 할 때다.
 
/양준호 인천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