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의 미추홀 ( 557 )
인천 출신 미술가 가운데 월북한 이는 화가 장성민과 홍종원, 조각가 조규봉이 있다. 장성민은 서울대 미대 재학 중 의용군에 입대해 1955년 평양미술대를 졸업한 후 미술제작소 창작실장 등으로 1993년까지 활동하였다.

홍종원은 1932년 부모를 따라가 청진에서 자랐다. 1946년 다시 고향 인천으로 와 간판집과 '삼성인쇄소' 등에서 화공으로 그림을 그렸다. 홍대 미대 재학 중 입대했고, 전후 최초로 김일성 광장에 초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조규봉은 1923년 인천공립보통학교, 서울 경신중학교를 거쳐 1937년 동경미술학교 조각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인 1944년 5월 부모가 있던 중국 동북 장춘시에 가 있다가 광복을 맞아 귀국해 조형예술동맹을 조직했다.
1946년 7월 하순, '강원도해방탑건설준비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조각가 김정수, 화가 이석호, 이쾌대 등과 월북했다. 그 해 말 평양 모란봉에 '해방탑'을 세웠고, 이어 조선미술가동맹 조각분과위원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특히 중앙보안간부학교를 위시해 강동 등 북한 도처에 수많은 김일성 동상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고, 천리마동상,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 만수대 대 기념탑 등 대형조각 건립에 참여하는 한편 40여 년간 교원으로 재직했다.

그가 이끌었던 '만수대창작사'가 최근 아프리카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 50m짜리 독립50주년기념 동상을 세워 화제다. 사회주의 프로파간다 조각 답게 크고 단순한데다가 값까지 싸서 아프리카서 인기라고 한다. '자유와 독립'을 상징하는 예술품 수출에 나선 북한,그 아이러니를 저 세상의 그는 어찌 보았을까.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