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예술인 - 39 연극협회 인천시지회장 봉 두 개
내달 4일까지 전국대회 출전작 경쟁

'제1회 전국가족극 페스티벌' 추진도


"인천연극 1세대 소임 최선 다할 것"



2010년 인천연극의 경향을 가늠할 수 있는 연극축제가 막이 올랐다. 전국 16개 시·도 대표팀이 한자리에서 경연을 벌이는 전국연극제 예선전으로 매년 치러온 인천연극제가 올해는 '인천항구연극제'라는 타이틀을 걸고 변신을 꾀하고 있다.
지난 11일 우수작품 초청무대부터 테이프를 끊었다. 공식 경선 작품은 17일부터 시작, 다음달 4일까지 다섯 극단이 5색의 릴레이 무대를 펼치고 있다.
'인천항구연극제'로 간판을 바꾼 것은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봄 수장을 맡은 봉두개 인천연극협회 지회장이 인천정체성이 담긴 축제를 일구겠다는 의지로 변화에 나섰다.
34년전 인천에 연극협회가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1976년, 연극협회 경기도지부) 단원으로 이름을 올린 인천 연극 1세대다.
인천 연극 역사의 중심에서, 때론 곁에서 함께 일궈온 연극인이다. 인천항구연극제는 시작일 뿐, 금년 할 일이,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도 많다.


#. '2010 인천항구연극제'
한국 연극과 맥을 같이해온 인천연극이다. 1970, 80년대 어느 도시보다 호황을 누렸다. 과거의 영화를 재현하고 인천만의 색깔을 입히고 싶었다.
지난해 봄 지회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인천항구연극제'를 띄운 일이다. 성과는 쏟은 시간만큼 더해진다. 2010 인천항구연극제를 맞는 봉 지회장의 감상이 어느 때보다 특별한 이유다.
"인천의 이미지를 담으려 했습니다. 인천하면 무엇보다 바다지요. 우리만의 축제는 더이상 안됩니다. 시민들이 찾아오는 축제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축제 아니겠습니까."
개막식도 항구 축제라는 색을 강조하기 위해 월미도 야외무대에서 치렀다.
시민축제로 만들기 위한 구상을 여럿 지니고 있었다.
수봉공원 인천문화회관 소극장 무대를 벗어나 계양구와 서구, 동구 지역을 두루 돌며 무대를 올리려는 구상이었다. 내친 김에 볼륨을 키워 국제연극제를 표방하고자 했다. 결국 예산이 문제였다.
"연극 인구가 적은 도시에서도 국제연극제를 열고 있는 현실입니다. 인천의 인적 인프라를 볼 때 향토연극제로 이름을 쌓고 있는 고마나루 축제에 버금가는 고유의 연극제가 충분히 가능하지요. 올해는 시도하는 선에서 그쳤으나 내년에는 만들고 말 겁니다."
극단들의 열의가 대단하다고 전한다. 극단 산만, 십년후, 피어나, 한무대, 집현까지 다섯팀이 출전, 경선을 펼치고 있다.
'어게인-환' '청자, 물을 만나다' '오두석의 3일' '율려(律侶)로 보자스라' '장릉의 지문'이라는 타이틀로 지난 17일부터 4월4일까지 인천문화회관 소극장을 달구고 있다.
참가작 규정을 특별히 정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대부분 초연에 창작극을 들고 나왔다.
"초연작은 신선한데 반해 완성도면에서 여지를 남겨두고 있지요. 그럼에도 극단마다 한계를 뛰어넘겠단 각오로 야심작을 준비했습니다."
지난해 전국연극제에서 인천팀이 고배를 마신 점도 작용했다.
"올해는 반드시 상을 따내 인천연극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의지입니다."
축제인만큼 우수작품 초청무대로 부피를 더했다. 극단 무예의 '아빠, 아버지 … 여보', 극단 은행목의 '그여자 사람잡네', 그리고 지회장이 이끌고 있는 엘칸토 '황혼'까지 3작품을 더했다.
"항구연극제야말로 시민들의 축제입니다. 주인공들이 찾아주셔야 비로소 자리가 완성됩니다."


#. 인천연극 활성화를 위해
연극협회 지회장으로서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인천전국가족극 페스티벌' 이야기부터 꺼낸다.
제목 그대로 아동극 전문극단이 펼치는 축제 마당이다. 첫회는 소박하게 시작하기로 했다.
인천에서는 사랑극단 '꼬마세상', 인형극단 '소리', 극단 '해오름'이, 부천에서는 극단 '예터'가 참여한다. 4월20일부터 5월9일까지 인천문화회관 소극장으로 어린이 관객을 부른다.
"행사 예산을 밝히기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어린 관객 개발이야말로 미래 연극의 희망이라는 취지에 극단들이 적극 동참해주었습니다. 인천연극협회가 인정하는 아동극단의 작품을 보여주는 자리입니다."
시작은 단출하나 뜻을 원대하다. 제대로 된 국제연극제를 향해 첫 발을 내딛는다.
인천상륙작전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도 준비했다.
"세미 뮤지컬을 올리겠다는 기획을 했습니다. 역시나 예산을 확보 못해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호러연극제도 꺼낸다. 인천의 진산 계양산을 무대로 한여름 축제라는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역시나 예산이 문제였다.
"국내 호러연극제는 대구쪽이 유일합니다. 대구연극협회로부터 지원약속을 받아냈는데 종자돈을 마련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인천을 담은, 가장 인천적인 연극제를 세우는 일이다. 주저앉을 수 없는 이유는 그래서다. "내년엔 꼭 만들어내야지요."



#. 연극인생 30여년
연극을 빼곤 그의 인생을 이야기할 수 없다.
30여년전 인천에서 연극협회가 태동했을 당시 단원으로 이름을 올린 그다. 새파란 나이에 겁 없이 당시 경동 돌체소극장에서 모노드라마를 올리기도 했다. 인천의 첫 극단 엘칸토를 창단한 것도 그의 손에 의해서다. 첫 작품으로 올린 '블랙코미디'는 대박을 터뜨렸다.
중도에 잠시 방송쪽 외도를 하기도 했다. 결국 다시 돌아온 자리는 인천 연극이다. 극단 엘칸토를 추슬러 재창단한다.
그리고 또 10여년이 흘렀다. 인천연극협회 지회장이 지금의 자리다.
"인천 연극이 걸어온 길을 누구보다 상세하게 알고 있지요. 곧 나의 인생이기도 합니다. 감정이 절절합니다. 지금 내가 맡은 소임을 다하는 일이 인천연극 부흥에 보탬이 된다면 그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겠습니까."

/글·사진=김경수기자 kk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