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의 미추홀
"새벽이 되면 쌀장사나 쌀 거간이거나 객주집 주인, 정미 직공, 목도꾼, 지게꾼 모두 가까운 술집으로 들어간다. 해장국 냄새가 김에 서려 행인의 코를 찌르고 회를 동하게 한다." 고일 선생이 전하는 옛 해장국집 풍경이다.

해장술로는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켰다고 한다. 뜨끈뜨끈한 술국밥 속 쇠뼈다귀에 흐늘흐늘 붙어 있는 고기와 구수한 콩나물, 조갯살, 선지 등이 들어 있는 얼큰한 국 한 그릇을 먹고 나면 배가 남산만 해졌다는 이야기다.

그 해장국이 추탕, 냉면과 함께 인천의 3대 먹을거리 명물이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인천 한 세기'의 저자인 신태범 박사는 이를 '개항이란 특수 환경이 빚어낸 작품'이라며 생전에 생활 문화사적 연원을 기술한 바 있었다.

"개항 직후 일인, 청인, 양인과 출입 선박들이 증가하자 쇠고기의 수요도 엄청나게 늘어 딴 지방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소를 잡게 되었고, 고기를 처분하고 남는 뼈, 내장, 선지 등이 한국 촌에 나돌았다." "이것을 주막과 술집에서 도맡아 술국을 끓이게 된 것이 해장국의 시초다. 각지에서 모여든 노무자들은 1년에 한두 번 맛볼 수 있었을까 한 고깃국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게 됐다"는 것이 인천 해장국 탄생의 배경이다.

최근 농수산식품부가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맛인 '매운 맛'의 등급을 나타내는 표준규격을 마련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잊고 살아온 '얼큰 해장국'은 과연 몇 등급이나 됐던 것일까 궁금하다. 쇠뼈다귀와 편육, 우거지 등이 푸짐한 오늘날의 토장 해장국도 맛나 인기지만, '인천의 매운 맛'도 되살릴 때가 된 것 같다.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