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理想)의 독점은 의외로 쉽다. 일단 신상의 이득을 다소 포기한 채 화려한 선과 정의의 깃발을 하늘 높이 쳐들면 된다. 개인적 고초가 약간 뒤따르겠지만 미래에 쥐게 될 사회적 권력에 비하면 견딜 만한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안중에 둘 필요가 없다. 실현 불가능성도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고결한 자신의 품성을 세상에 내보일 수만 있다면 이상을 주장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기나긴 인류사 속에서의 이상은 수없이 갖가지 현란한 옷을 입고 유령처럼 나타났다 사라졌고, 그것을 외치는 동안 값비싼 대가를 치러왔지만 그 대부분이 헛소리였다는 것을 자신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굶지 않고,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고 했을 때, 그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부정한다면 정상이 아니다. 반대로 당장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어 인류를 기아에서부터 구원하겠다고 해도 정상이 아니다.
현실적 제약을 일거에 해결해 이상향에 도달하는 하는 길이 혁명밖에 없다는 유혹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지구촌 어디에도 유토피아는커녕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실사구시를 못한 채 내거는 이상들 때문이다.
북한식 '무상진료'가 그 대표적인 예다. 독일인 의사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의 무상진료는 말의 잔치일 뿐이다. 마취약 없이 다리 절단수술을 하는 '무상'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무상의 천국'을 만들자면 소득의 40%
가까이를 세금으로 낼 용의가 있어야 한다. GDP 4만 불의 북유럽 사회민주주의가 그렇다.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