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포구·공장 풍경 앵글속 고스란히 담아 인천·서울서 '시간의 흔적'展
진흙 바닥에 물기먹은 원목이 잔뜩 널려 있다. 끝닿는 곳에서 공장들과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또 다른 사진은 쌓인 원목더미 옆 공장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퍼져나온다. 바로 인천 북성부두 모습이다. 나머지 사진에는 몇년전 철거된 만석부두의 한국유리 공장이 있다. 자욱한 안개속 슬레이트 구조물이 드러나는가 하면, 함석 지붕위 돔형 광고 판에 'HAN GLAS'라고 쓰여진 글자가 건물의 실체를 대변해주고 있다. 김보섭 사진작가가 최근 작업해온 작품들이다. '인천'만을 앵글에 담아온 그답게 역시나 인천이다. 그 중에서도 동구의 북성부두와 만석부두, 그리고 화수부두를 내놓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전시회를 편다. '김보섭 사진-시간의 흔적'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부제가 '동구의 공장들'이다.


#. 북성부두에 서서
인천의 오래된 포구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앵글에 담아온 김보섭 작가다.
'청관' '바다사진관' '수복호사람들'로 이어지는 그의 사진집엔 포구, 그리고 사람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최근 몇년간 북성부두에 집중했다. 그간의 사진에선 부두가 배경으로 녹아있었다면, 이번에는 부두 그 자체다. 공장이 있고, 바다가 있다.
"멀리서 바라본 부두에서, 한발 나아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선창산업과 대성목재, 건너편 삼미사와 대한제분이 부두와 맞닿아 있는 곳입니다. 이 지역이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기록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담아왔습니다. 어느 순간 없어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가슴을 치더군요. 인천시민이 함께 지니고 있어야 할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대성목재로 뚜벅뚜벅 들어가 한바퀴 앵글에 담았다. 선창산업은 몰래 들어가 찍었다. 그안엔 사람의 흔적이 있었다. 한 두번으로 중단할 수는 없었다. 그간 찍어왔던 작품 포트폴리오를 들고 가 사진을 찍고싶다고 청을 넣었다. 결국 허락을 얻어낸다.
"동해의 물결치는 바다보다, 남해의 파란 물결보다 나에겐 이곳만큼 정겨운 바다는 없습니다. 부두와 더불어 이곳이 계속 남아있었으면 합니다."

#. '바다사진관'에서 출발
이곳의 진가를 익히 알고 있었다. 대성목재와 바다를 뒤로 하고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을 한사람, 혹은 둘, 셋 세워 앵글에 담았다. 마치 가상의 사진관을 차려놓은 듯 본인은 사진사가 돼 인물들을 찍었다. 이들 작품을 모은 사진집이 '바다사진관'이다.
"경계하던 동네 사람들이 차츰 맘을 풀었습니다. 어느새 주민들은 사진관을 찾아온 이처럼 앵글 앞에서 포즈를 취했지요. 정겹게 찍었습니다. 장소에 마음이 갔기 때문에 시도한 작업이지요." 북성포구에 대한 애정이 점점 쌓여갔다.
장소가 그에게 말을 건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말하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고 작가는 말한다. "사라지는 것들을 담는다는 면에서 사진이 자료로서 만으로 가치가 있다고 한다면 틀린 얘기지요. 사진에는 혼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 '김보섭 사진-시간의 흔적'전
이번 전시 제목이 '시간의 흔적-동구의 공장들'이다. 오는 12일 개막, 18일까지 인천종합문예회관 미추홀전시실에 작품을 건다.
북성부두 모습들이 주를 이룬다. 욕심을 냈다. 가로 세로 각각 2m, 1m 크기의 작품을 12점 만들었다. 사진작가로서 목격한 현장의 느낌을 그대로 옮기기 위해서였다.
"한마디로 몸부림 쳐 만든 작품이지요. 동기는 하나입니다. 인천을 내보이고 싶었습니다." 인천에 대한 애정이 그대로 묻어난다.
다가 아니다. 만석부두 한국유리 공장이 스러져가는 현장을 담은 사진도 내놓으려 한다. 1950년대말부터 그 지역을 상징처럼 지켜오던 공장이 군산으로 이전하면서 철거되는 과정을 사진작가는 1년여동안 담아갔다.
"안개 낀 새벽이거나 비오고 눈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카메라 가방을 둘러메고 부두로 달려갔습니다. 그런 날씨야말로 옛날의 정서 그대로를 살려 담을 수 있습니다. 주변의 거추장스러운 풍경들이 생략되고 구조물만이 피사체로서 살아나게 되지요."
이중 15장을 골라냈다. 내친 김에 화수부두를 담은 사진들도 내보이기로 했다. 15장을 뽑았다. "DVD로 보여줄 겁니다. 슬라이드를 보면서 나서서 설명을 붙이려합니다."
진도를 더 나가기로 했다. 인천전을 마치고 서울에서 자리를 펴려한다. 이미 장소섭외도 마쳤다. 4월21일부터 27일까지 종로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내보이기로 했다.
서울전을 여는 이유가 있다. "가장 인천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지요. 내가 먼저 이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인천에 살고 있어서 매일 그곳에 갈 수 있다는 것이 내게 유리한 점이잖아요. 많이 본 만큼 그 느낌을 그대로 담을 수 있는 것일테니까요."
사진가들에게 매력 있는 장소라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있었다. 지난해 10월 중구 문화예술공간 인천아트플랫폼 개관전 당시 북성부두를 담은 사진 4점을 내놓았다. 단번에 외부작가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곁에 살고 있는 그에게 부러움을 건넸다.
"나만이 갖고 있는 장소였으면 하는 바람이 사실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용기있는 자라면 이곳이야말로 공유해야 할 가치라는 생각에 미쳤습니다." 이곳 부두가 그 모습 그대로 언제까지나 존재해야 할 이유가 그래서다.
그 마음을 담아 전시회 도록 서문에 작가는 이렇게 쓴다. '비오는 날 북성부두에 서서 바다를 바라본다. 대성목재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원목을 실은 배들이 오가고 있다. 굴뚝과 공장과 모든 것을 그대로 둔 이 독특한 바닷가를 문화지역으로 재탄생시킬 수는 없을까 생각해본다.'

/김경수기자 kk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