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예술인 - 37 동양화가 리 지 훈
겸재 정선 영향 '실경' 바탕한 사실주의 화풍

매화 주제 개인전 15일부터 인천 연정갤러리   


겸재 정선을 닮고 싶었다. 겸재가 중국의 진경산수 화풍을 깨고 우리 산천을 화폭에 담았듯이 실경산수에 빠져 살아왔다. 구름에 달가는 나그네처럼 시간이 날 때마다 자연을 찾아나섰다. 때론 화첩을 들고, 때로 사진기를 들고 떠난 여행에서 몸으로 가슴으로 느낀 감성을 화선지 위에 먹으로 풀어놓았다. 그렇게 그림과 더불어 산 삶이 어느덧 40여년이다. 리지훈 화백 이야기다. 오랜만에 개인전을 편다. 공력에 비해 뜻밖에 개인전은 이제 겨우 다섯 번째다. 3월15일~31일 옥련여고 연정갤러리를 묵향으로 채워놓는다.


#. 겸재에 꽂히다
"조선 전기이후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이가 겸재입니다. 당시 그림은 당연히 중국의 영향을 받은 관념산수화였지요. 이를 깨고 최초로 한국 산천을 화폭에 담은 작가가 바로 겸재입니다."
겸재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하는 화백이다. 누구보다도 겸재의 화풍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증명이라도 하듯 대학원 논문제목이 '겸재의 예술과 진경산수화에 관한 고찰'이라고 툭 던진다. 지금으로부터 25년전에 쓴 논문이다. 그 이전부터, 그후 지금까지 겸재의 예술세계에 대한 애정을 변함없이 지녀왔다는 말끝에 환한 미소를 단다.
애시당초 캔버스와 채색물감 대신 화선지와 먹을 잡은 그다.
"미술반 활동을 했던 고교시절 새로 부임한 미술선생님이 동양화를 전공한 분이셨어요.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동양화를 열심히 그렸지요."
스승 복이 많았다. 서라벌예술대학 동양학과에 진학했는데, 그곳에 화풍을 흠모했던 연정 안상철 교수와 대한민국 6대화가로 꼽히는 소정 변관식 교수가 있었다.
"그분들의 가르침을 받은 것은 나에게 행운이었지요." 그렇게 동양화는 그의 삶의 중심에 놓이게 됐다.

#. 실경산수를 그리다
화백은 실경산수화가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자연을 접하려 시간이 날 때마다 전국을 밟아온 그다. 직접 보고 느끼기 위해서다. 그 감성은 오롯이 화폭 위에 살아난다.
이미 화단에선 정평이 나 있다. 김남수 미술평론가의 평을 들어보자.
"한국적인 산하와 자연경관에 매료되어 전국 방방곡곡을 발길 닿는 곳이면 어디든 손금 들여다 보듯 누벼 온 청원 리지훈은 실경에 바탕한 사실주의 회화양식을 집요하게 추구해온 중견작가다. 그의 조형작업은 소재의 단순한 재현이라기보다 작가의 심안을 통해 재조명된 미의식의 확대와 새로운 미감의 창조에 감성을 두고 있다."
최근에 꽂힌 장소를 묻자 안동 지레예술촌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안동 김씨종택 중 한곳이지요. 문명의 이기가 아직 덜 묻은 산골입니다. 도산 서원도 자주갑니다. 퇴계가 즐겨 거닐었다던 청량산 '녀던길'도 경치가 좋습니다." 자연 예찬이 줄줄이 이어진다.
이어 먹 예찬으로 넘어간다.
"처음 동양화를 접했을 때 먹에는 우주만물의 색이 들어있다는 배움을 들었습니다. 이젠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발묵의 오묘함이라든가, 농도에 따라 변하는 색이 실로 다양합니다. 특히 먹으로만 그리는 그림을 좋아합니다."

#. '화려한 외출-매화전'
그간 펴온 개인전이 한손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다.
장년시절 첫 개인전(1984년)이후 10년쯤 지난 시점에서 두번째 전시(1993년)를 했다. 그후 또 13년이 지났을 즈음 정년퇴임을 기념해 세번째 개인전(2007년)을 열었다.
지난해 문화원연합회인천시지회 초청으로 제물포구락부에서 연 전시를 더해 이번이 다섯번째다.
옥련여고 연정갤러리에서 이달 15일부터 31일까지 그림을 건다.
"전람회란 화가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자리죠. 작품을 통해 바로 나를 내보이는 것입니다. 그런 전람회를 어떻게 많이 할 수 있겠습니까."
한번 내 보인 작품을 혹여 다른 전시에서 내보일 순 없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개인전이 적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다 있다.
실경산수화를 기대했는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매화를 주제로 잡았다. 그래서 타이틀을 '화려한 외출-매화전'이라고 붙였다.
"연정갤러리 개관이후 계속해서 초대전 제의를 받아왔습니다. 평생을 교단에 서 왔던 터라 학교 안 갤러리에서의 전시가 마음이 갔지요. 결심을 드디어 풀었습니다."
연정갤러리 큐레이터를 맡고 있는 이창구 작가가 주제를 매화전으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의를 해왔다.
"사군자 중에서 가장 즐겨 그리는 그림이 매화입니다. 봄이면 매화마을을 많이도 찾았지요. 한편으로는 화가라면 콜렉터 요청에 따라 무엇이든 그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화가란 그림을 팔아 먹고사는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이번 전시 주제가 마음에 들었다고 부연설명한다.
굵은 나뭇가지에 몇 송이 매화가 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그림이 아니라 흐드러지게 핀 매화다. 참새도 몇 마리 앉아 있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봄의 한가운데 있는 듯 하다. 100호짜리 작품에서 봄 내음이 물씬하다.
"지난 겨울 내내 매화를 그리며 지냈습니다. 의미를 해석하기 보단 편안하게 분위기를 느꼈으면 합니다. "
화가 누구나 그렇듯이 모든 그림이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뭔가 부족한 감이 늘 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려가는 과정에 심취하는 느낌이 특별합니다. 그래서 그림을 계속 그리나 봅니다. 매화만으로 하다보니 나를 다 내보이지 못했습니다. 실경산수를 모아 개인전 한번 더 열어야지요."
/ 김경수기자 kks@itimes.co.kr


작품설명
'매작도(梅雀圖)'
'백매(白梅)'
'문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