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예술인 - 35 설치미술가 이 승 택
기존의 틀 거부 … 실험예술 선구자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


28일까지 개성 넘치는 작품 전시




'한국 추상미술 1세대', '현대 미술의 대가', '실험예술 선구자', '아웃사이더', '미술계 이단아'. 설치미술가 이승택(77)하면 따라오는 수식어다. 그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다. 일상과 사회, 기존의 틀을 거부한 독특한 예술 세계로 인해 그는 늘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캔버스에 물감 바르기를 거부한 작가. 불(火), 물(水), 공기(氣), 흙(土) 등 비정형적 소재들을 통해 예술작품의 비규정성과 가변성에 대한 실험을 지속하다 보니 세간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던 것. "유희에 취해 생각나는 대로 작품에 몰입한 것 뿐, 기를 쓰고 걸작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안한다. 남을 위한 창작이 아니라 오로지 내 즐거움을 찾기 위해 하는 것이다."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해 현재까지도 왕성한 실험성을 바탕으로 청년같은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이승택 작가를 지난 3일 서울 마포 연남동 자택 겸 작업실에서 만나봤다.


#. 백남준과 이승택 사이
이승택은 지난해 11월28일 '제1회 백남준 아트센터 국제예술상'을 수상했다.
백남준의 정신과 의미를 전달하고 현대 예술의 맥락에서 발전시키고 있는 작가를 발굴하기 위한 백남준 아트센터 국제예술상의 첫 번째 수상작가로 그가 선정된 것은 이변이었다.
"상이라는 것도 정치성이 짙은 산물이라 실력과 상관없이 정치코드에 따라 수상이 결정된다. 그 속에서 나는 시류나 유행과 상관없는 미술을 해왔다. 그래서 일부 기성작가들은 나를 무시한다. 나 또한 상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국내외 심사위원 10인의 엄격한 심사 과정을 거쳐 만장일치로 선정됐다.
이유는 간단했다. 평생을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시대를 앞서가는 창조적 마인드로 상업 예술의 흐름에 동요되지 않고 지켜온 그의 작가정신이 백남준의 정신과 일맥상통하기 때문.
"수상 소식이 믿어지지 않았다. 50여년을 미술계에서 아웃사이더로 살아왔는데 이번 수상으로 아직 한국 미술계가 양심이 존재하구나 느꼈다."
오는 28일까지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전시에서 그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다.


#. 50여년 외톨이 예술의 승리
함경남도 고원 출신인으로 어렸을 때 이름난 개구쟁이였다.
손재주가 뛰어나 그가 흙으로 만든 작품은 교장실로 직행했다.
먹는 무로 사람을 조각하는 등 주위 사람들로부터 신통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홍익대 재학시절부터 세상, 사람과 '거리두기' 게임을 시작한다. 왕따를 자청한 셈이다. 지금까지 아웃사이더 예술가로 통한다.
"술, 담배를 전혀 못한다. 그래서 친구도 많지 않다. 하지만 외롭지 않다. 세상과 어울리고 미술 사조에 발맞추다 보면 나만의 특색이 없어진다. 나 스스로 혼자이고 싶었다. 세상이 나를 왕따시킨 게 아니라 내가 세상과 거리를 둔 것 뿐이다."
이승택의 작품은 특이하다.
나뭇가지 사이에 붉은색 성기(性器) 오브제를 설치한 '장생목'(長生木, 1966), '털난 캔버스'(1969) 등 추상적 형태를 가지지만 상징성과 서술성이 강조된 작업들을 보여준다.
홍대 교정에서 100m의 천을 날리고 한강에 불을 내는(1969) 등 그의 작품세계는 그야말로 사건의 연속이었다.
"좀 더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은 전혀 없다. 단지 새로운 것을 찾고 세상을 비틀어 보니 예술이 됐다."
지금도 하고 싶은 작품 아이템이 샘물처럼 팡팡 쏟아져 나온다는 그는 "영원한 현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특별한 계획이나 전시, 작품을 염두해 두지 않는다. 그저 현재를 즐긴다"라고 말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그의 예술은 현재진행형이다.


#. 아내는 내 운명, 가족도 예술
"나는 미술보다 집사람(아내)을 더 사랑한다."
이승택의 가족 사랑은 특별하다. 작업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아내와 함께 한다.
"아내는 처녀시절 인기가 대단했다. 결국 박사도 물리치고 아내와 결혼에 성공했다. 아직도 아내는 나를 위해 삼시 세끼를 정성스럽게 차려준다. 50여년 동안 편안한 아내의 내조가 없었다면 나는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집은 입체성이 강한 작품들로 채워져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심지어 욕실까지 작품들로 가득했다. 아내의 양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그는 세상에서 아웃사이더로 통하지만 집에서만큼은 착한 남편, 든든한 아버지, 인자한 할아버지로 살아가고 있다. 아주 평범하게 말이다.
"대중을 의식하지 않는 예술을 하다 보니 나의 작품과 예술이 특이하다는 평을 받아왔다. 가족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내와 가족은 내 인생 최고의 걸작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승택의 작품 세계와 상상력은 현재 그의 일기장에 고스란히 기록되고 있다. 언젠가 그의 일기장이 한국 현대 미술계의 역사서가 되길 기대해 본다.

/강현숙기자 blog.itimes.co.kr/kang78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