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고의 브랜드는 '부채표 활명수'다. 1897년 민병호가 생약 비방과 양약을 접합시켜 만든 급체, 소화불량의 '특효약'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1909년 상표법에 따라 조선인으로는 처음 특허국에 등록했다.
그 무렵인 1904년, 인천부(仁川府) 축현리에는 제생당(濟生堂)이라는 제약 회사가 있었다. 소화제 '청심보명단(淸心保命丹)'을 만들었는데 '전의 홍철보와 군의 장기무의 유효 증명으로 이 약을 만들었다.'고 선전했다.
인천 '화평당(和平堂)'도 제약소로 유명했다. 불임 치료제 '태양조경환', 매독 치료제 '사향소창단' 등을 제조해 전국의 약방에서 판매했다. 인천이 약업(藥業) 분야에서 서울 쪽에 뒤지지 않고 분발했던 것이 대견스럽다.
그러나 '활명수'는 1931년 가내공업 수준의 공장을 '주식회사 동화약방'으로 법인화하면서 성장을 거듭해 오늘날까지 '가스 활명수'로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데 반해 '청심보명단'은 역사 속에 묻혀 잊혀지고 말았다.
배다리 개장국골목 초입에 있던 동명 '제생당 약방'이 그나마 옛 명성을 떠올리게 했으나 '제약 부활'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 중에 나온 것이 지역대의 '약학대' 개설 방침이었으니 모두 반겨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신도시를 최첨단 바이오 신약 생산기지로 만든다는 시(市)의 구상과 함께 전통계승에 기여할 인재를 양성할 약학대까지 개설하게 됐으니 금상첨화였다. 그런데 '굴러들어 온 돌' 연세대가 허욕(虛慾)을 부려 지탄을 받고 있다. '지성집단'이라며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싶은데 안하무인 막무가내다. 별 꼴이다.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