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화성의 꿈'
지난해 봄이었다. 우연히 수원시청의 '화성 바로알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화성을 돌며 전문가로부터 스토리텔링을 듣는 자리였다.
처음, 200년 전 성곽이 온존히 남아있는 것을 보고 감탄했던 기자는 전문가의 해설을 들으며 다시 한번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화성 안에 숨겨진 이야기가 너무도 신비스러웠던 것이다.
매혹적인 신화를 풀어놓은 사람은 수원화성박물관 학예팀장인 김준혁 박사였다. 그는 명료한 능변으로 이야기보따리를 술술 풀어놓으면서 기자의 역사적 호기심을 한껏 자극했다.
"정조대왕도 정치자금을 받았는데 돈이 아닌 나무로 받았다" 라든지, "사도세자는 정신병자가 아닌 정말 잘생기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정조는 사도세자를 좋아했다" 등등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은 그야말로 흥미진진한 주제들이 대부분이었다.
7월15일 창간일을 앞두고 김 박사에게 제안을 했다.
"박사님 인천일보 창간기념으로 사람들이 몰랐던 화성이야기를 연재하려고 하는데 자문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가 명쾌하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우리 화성을 언론에서 홍보해주겠다는데 오히려 고마운 일이지요."
6개월간의 '화성여행'의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매주 한 차례씩 동행취재를 하면서 김 박사는 '영양만점'의 자문을 해줬다. 특히 지금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만을 취재·보도하는 것이었으므로 기사쓰기의 기쁨은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동행취재에서 부족한 취재시간은 혼자서 보충하기도 했다. 그렇게 돌아본 화성은 막 잡아올려 파닥거리는 물고기처럼, 18세기 조선의 역사가 생생히 살아숨쉬는 현장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감동한 것은 정조대왕의 정치력과 위민사상이었다. 화성 곳곳에는 당쟁의 토네이도를 정면으로 돌파한 왕의 정치력과 권력보다는 백성에 취해 있는 정조의 위민사상이 짙게 배어 있었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라고 했던가. 화성은 오늘을 슬기롭게 살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많은 시설물이 복원되지 않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남지·동지 등 거대연못과 남공심돈 등 화성에는 아직까지 수십 개의 미복원 시설물들이 남아 있다.
염상균 화성연구회 사무처장은 "해당 시설물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야 하고 발굴을 통해서 유구를 하나라도 건져야 하며 후세에 누가 되지 않도록 튼실한 복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둣빛 이파리들이 부풀어오를 때 처음 만난 화성에 얼마전 함박눈이 내렸다. 오늘은 절기상 입춘. 머잖아 화성이 품고 있는 팔달산 자락은 울긋불긋한 꽃들로 환하게 피어오를 것이다. 화성을 떠나는 기자의 등 뒤로 낮고 굵은 정조대왕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금처럼, 200년 뒤에도, 또 그 뒤에도 나는 화성과 함께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끝>

/글=김진국기자 blog.itimes.co.kr/freebird
사진=김진국·김철빈기자 (블로그)naro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