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정년퇴임 … 서구 FC유소년단 대표로
"평교사로 정년을 맞이한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 줄 만한 얘기가 무에 있을라고요…."
이달 말로 40년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차형도(62) 인천남동초등학교 교사는 '인천 초등 축구'의 전설로 불린다. 인천·경기지역 6개 초등학교에 축구부를 창단하고 뛰어난 축구 인재들을 길러내는 등 초등 축구 지도자의 외길 인생을 달려 온 주인공이다.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나 6·25전쟁으로 혼란스럽던 1·4후퇴 때 가족과 함께 피란 온 인천에 터잡고 60 인생을 살아 온 인천사람이기도 하다.
시간외수당이나 상여금이 나오는 일도 아니건만 그의 축구사랑은 뜨거운 교육열정과 맞물려 40년 간 계속돼 왔다.
"1969년 한적한 시골마을인 가평율길초교에서 처음 교편을 잡았는데 방과후에도 특별히 갈 곳이 없어 배회하던 어린 제자들을 지켜보면서 뭔가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그는 마을 조기축구회에서 축구공을 빌려 방과후 학교운동장을 어슬렁거리던 아이들을 불러 모아 함께 축구를 시작했다.
전문적으로 축구수업을 받은 적이 없고 따로 코치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축구기술이나 전술은 각종 축구지도서를 구입해 스스로 독파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쳐야 했다.
축구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 그는 가평조종초교를 거쳐 1976년 인천으로 전입한 후로도 인천간석초교, 인천부흥초교, 인천동부초교, 인천남동초교에 이르기까지 등 부임한 6개 초교에 축구부를 창단하는 산파 구실을 도맡았다.
상인천초교와 인천약산초교에서도 근무했지만 이들 학교는 이미 야구부와 육상부를 육성 중이어서 축구부를 창단하지는 못했다.
노정윤, 이임생, 곽경근, 장대일, 강대호 등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유명 선수들이 모두 그의 지도를 받고 성장한 제자들이다.
전국소년체전, 금석배, 눈높이컵, 전국왕중왕, 인천시장배, 인천조기회장배, 인천시교육감배, 인천축구협회장기 등 내로라하는 각종 초등축구대회에서 발군의 실력으로 우승한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이기는 축구보단 기본기 지도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유소년 축구 때 기본기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중·고등학교로 진학하거나 프로축구에 진출해서도 결코 빛을 발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동료에 대한 배려와 성실함을 갖춘 진정한 선수를 길러내는 인성교육에 그는 항상 열정을 쏟았다. 지금도 매주 3차례 방과후 선수들을 훈련장에 모아 놓고 영어교육을 실시한다.
국제적 언어능력을 갖춘 글로벌 선수로 키워야 장차 세계 무대를 누비고 다닐 수 있다는 신념에서다.
축구로 인연을 맺은 제자들은 끝까지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이미 장성한 제자는 물론 그 자녀들에게까지 일일이 가정사를 챙기고 인생상담을 해주는 등 인생 선배로서 정성을 기울여 오고 있다.
특히 그는 1996년부터 만 14년 간 장기근속 중인 인천남동초교 축구부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그 스스로가 창단한 축구부가 너무 좋아 이 학교에 정식근무 4년, 초빙근무 4년, 재초빙근무 4년, 전보유예 2년을 합해 모두 만 14년 간 근무해 왔다.
"나에겐 영광스런 정년퇴임지로 남게 됐는데 이처럼 한 학교에 오랫동안 장기근속한 교사는 국내 초등학교 교사 가운데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로 알고 있습니다."
'(한 학교에 장기근속하는 게)지겹지 않냐'는 주변의 시선도 있었지만, 그는 끊임없이 좋은 성적을 내주는 손자뻘 어린 제자들이 한없이 사랑스럽고 기특해서 계속 인천남동초교 체육부장으로 근무하기를 고집해 왔다.
수많은 국내외 대회에 선수들을 이끌고 다녔던 그에게 있어 가장 환희의 순간은 2004년 제주 서귀포에서 열린 '70리배 춘계 한국초등학교축구연맹전'.
인천남동초교가 당시 전국 최강으로 불리던 의정부 신곡초교를 극적으로 격파하고 우승컵을 안았던 순간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열린 '동원컵 전국왕중왕대회' 3위 입상 순간도 결코 잊을 수 없다.
3위를 차지한 부상으로 1천만 원을 받았는데 이 돈으로 5학년 선수들이 예산 걱정 없이 동계훈련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또 대한축구협회가 인천남동초교에 인조잔디를 깔고 야간훈련을 위한 조명설비도 지원해주기로 약속해 한시름 덜었다.
한윤규 전 교장이 2001년 축구선수 휴게실인 '꿈나무터'를 건립해주고 문상식 현 교장이 학부모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전국 최상의 행·재정 지원으로 축구부 활성화에 물심양면 힘을 실어주는 데 대해서도 그는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다.
오죽 애정이 넘쳤으면 퇴임을 앞두고도 최근까지 3~5학년생 39명의 꿈나무 선수를 스카우트하는 일에 직접 매달렸을 정도다. 이달 졸업하는 6학년생 16명도 전원 인천광성중과 만수중 등 축구 명문으로 진학시키는 데 견인차 역할을 다했다.
그는 인천생활체육회는 물론 인천보디빌딩협회, 한국해양소년단 활동에도 의욕적으로 참여해 왔다.
60대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20대 청년 같은 '몸짱'을 자랑한다.
인천을 대한민국 최상의 교육도시에 걸맞는 국제시민교육의 본고장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안고 2008년 6월 발족한 인천자유교육연합의 교원연대 대표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눈 앞의 승리에 집착하기 보단 선수들에게 협동심을 강조해야 한다"면서 "지난해부터 시행된 초·중·고교 축구 주말리그제를 속히 정착시키는 것도 한국 축구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방안이 될 것"이라고 후배 지도자와 제자들에게 당부한다.
퇴임 후 계획이 궁금하다.
그는 "축구 제자들이 나를 위해 자발적으로 ㈔서구F.C 유소년축구단을 설립해 대표로 옹립해 놓은 상태"라며 "이 단체의 방과후 특기적성 및 축구클럽 지도자로 뛰면서 꿈나무 선수를 조기 발굴하는 일에 여생을 바칠 계획"이라고 밝힌다.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는 경구도 궁금해졌다.
"인자무적(仁者無敵). '어진 사람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므로 세상에 적이 없다'는 맹자(孟子)의 말을 삶의 신조로 살아오고 있지요."
항상 너그러운 웃음과 특유의 친화력으로 인천교육계의 마당발로 통하는 그는 오는 27일 오전 10시 남동농협 3층 아름다운뷔페웨딩홀에서 축구 제자들이 마련하는 정년퇴임 행사를 끝으로 정들었던 교단을 떠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선 인천창영초교 3학년 때 은사인 서성옥 전 서울시교육위원회 의장이 격려사를 한다.
이병학 전 경기예술고 교장, 허장강 인하대 경영대학원 실장, 강혁희 전 인천마장초교 교장, 김종길 전 인천작전초교 교장, 심평택 전 인천서림초교 교장, 박경덕 인천 남부교육청 장학사 등 지인들이 대거 출연(?)하기로 했다.
이들은 손수 악기를 연주하거나 축가를 부르고 시를 낭송하는 등 조촐한 문화축제로 그의 퇴임을 장식할 계획이다. 교육계 유명 인사들이 퇴임 행사의 카메오를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봉사와 베풂은 아름다운 중독'이란 말이 있잖아요? 남은 인생은 아름다운 중독에 걸려 살겁니다."
너털웃음을 짓는 차 교사의 해맑은 얼굴이 마치 소년의 그것과 같아 보인다.

/글=윤관옥·사진=양진수기자 blog.itimes.co.kr/okyun


■ 차형도 교사가 걸어온 길

-황해도 연백군 봉북면 출생(1948년 1월10일)
-인천창영초교, 동인천중, 동인천고, 인천교대 졸업
-가평율길초교 교사 초임발령(1969년 3월1일)
-가평조종초교, 인천간석초교, 인천부흥초교, 인천동부초교, 상인천초교, 인천약산초교, 인천남동초교 교사
-인천시 보디빌딩협회 부회장
-인천자유교육연합 교원연대 대표
-우수교원 교육감 표창(1990년), 체육청소년부장관 표창(1991년), 인천시 체육상(1999년), 해양수산부장관 표창(1999년), 모범공무원 국무총리 표창(2005년), 남동구민상(교육·체육부문, 2008년)
-황조근정훈장 수훈 예정(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