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의 미추홀
세계적인 투자자 워렌 퍼빗이 최근 '철도'에 투자하기 시작하자 세상 사람들이 의아해 물었다. 왜 구시대의 유물 같은 철도에 투자하는가? 미국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 대의 한 학생도 그에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사 주신 장난감 기차가 인연이 됐다. 철도는 연료가 트럭의 3분의 1에 불과하고, 대기오염이 적을 뿐만 아니라 기차 한 대가 트럭 280대 분량의 화물을 나를 수 있는 이 시대의 대안이기 때문이다."

한 세기여 전, 미국 공사로 일했던 이하영은 난생 처음 화륜거(火輪車·기차의 옛 이름)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1889년 귀국해 고종을 알현하면서 가지고 온 폭 6치, 높이 8치 크기의 기차모형을 진상했다.

웨렌 퍼빗처럼 수치(數値)를 들어가며 기차의 경제적, 환경적 효용가치를 자세히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기차의 이점을 체험으로써 익히 알고 있었던 그의 말을 들은 고종은 화륜거 도입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철도의 효시인 경인선은 우여곡절 끝에 1899년 9월 18일에야 개통됐다. 인천과 노량진 사이 32.2㎞ 노선에 영업을 시작했는데, 인천역에서 열린 개통식 소식을 독립신문은 다음날 크게 보도한 바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철도시발지 비(鐵道始發地 碑)'는 노량진역 한쪽에 서 있다.

그 비는 기차를 미국에서 실어와 인천서 조립해 시운전하고, 개통 당일 인천역에서 서울로 출발한 역사적 사실을 무시한 '역사왜곡 비'인 것이다. 시대적 대안으로 떠오른 철도와 연계해, 인천의 철도사와 그 현실적 활용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

/객원논설위원